[칼럼] 봄은 어디서 오는가?
[칼럼] 봄은 어디서 오는가?
  • 이두남
  • 승인 2019.03.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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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봄이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 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피천득의 수필 봄의 일부다. 봄은 생명의 경이와 함께 새롭고 신선한 감동을 주는 계절이다.

고결한 한 생명의 탄생처럼 개화하는 순간을 보며 바람도 햇빛도 사람도 순간 숨을 멈춘다. 아름답고 고결한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는 모든 사물의 움직임이 일지 정지된다.

새로운 생명에의 존엄함이며 엄숙한 경이로움이다, 사람이 그러하듯이 나뭇잎이나 꽃잎이 개화할 때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이른 봄에 잠시 찾아오는 황사현상을 기억한다. 언제부턴가 미세 먼지가 세상을 삼킬 듯 일상이 되어가고 있어 걱정이다. 그렇지만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매화를 만나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봄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처럼 봄은 어느 통로로 다가 오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매화가지 끝에서 제 혼자 부풀다 툭툭 터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제 오는지도 모르고 맞이하는 것이 어찌 계절뿐이겠는가? 나이를 먹는 것 또한 반기지도 않았는데 어느 틈에 비집고 들어와 기어코 한살을 끼워 넣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나이를 잊고 살아간다. 겨울이 언제 뒷걸음질 쳤는지 모르지만 나이는 결코 뒷걸음질 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무채색 겨울을 밀어내고 어느덧 매화가 피는 때도 삼일절 전 후의 일이다.

매화를 보며 오롯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졌을 그들의 붉디 붉은 독립의 의지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지금 우리가 그 때 그 시절을 다시 겪는다면 그들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삼일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는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한 해이다. 2차 북미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었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휴전중인 한반도에도 평화가 봄처럼 스며들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상승했지만 노딜로 끝나 허탈감을 더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던 날,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함께 불렀던 한반도였다. 그렇지만 남북이 서로를 향해 겨누던 총부리를 버리고 홍매화처럼 향기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통일의 염원이 식지 않는 한 언젠가 평화의 꽃망울을 터트리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요즘 들어 통일을 꿈꾸는 젊은 세대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나라나 민족을 생각하기 보다는 서구화 개인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과거의 잣대로 젊은 세대의 디지털 문화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각과 기준이 있다. 그러므로 아날로그의 기성세대는 육체적인 근육보다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 미래 세대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어리둥절하여 꽃대 밀어 올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매화꽃처럼 젊음이 뒷걸음질 치는 것이 두려워 익어가는 것을 외면하지 말고 온화한 얼굴로 웃어넘기는 지혜 또한 발휘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 자신의 행적을 과시하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신념을 청년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칭찬하고 덕담하며 경청하는 자세와 좀 더 베풀며 산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바람직하게 나이 듦은 지위의 높고 낮음, 빈부의 격차가 아니라 좋은 인간관계에 있다. 그것이 무엇보다 큰 자산이고 삶의 활력소이다. 푸념은 마음의 녹이고 마음이 녹슬면 생명의 회전이 둔해져 굳어버린다.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게 된다. 푸념보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할 때 마음의 윤활유가 되어 삶을 회전 시킬 수 있다.

2차 북미회담도 미세먼지도 회색빛으로 가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푸념보다는 우리의 지혜와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화창한 봄날이 되리라 전망해본다.

격려 (激勵)의 려는 만(萬) 사람의 힘(力)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격려는 큰 힘과 용기가 되어 그 힘을 백 배, 천 배, 만 배로 끌어 올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100년 전 3.1운동의 격려가 그랬듯이 다시 한 번 힘을 합쳐 아름다운 봄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했다.

봄날, 붉은 몽우리의 외침처럼 평화와 경제의 봄날도 특별한 이 봄과 함께 향기롭게 스며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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