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월의 바람
[칼럼] 사월의 바람
  • 이두남
  • 승인 2019.04.0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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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칼럼니스트)

[울산시민신문] 꽃보다 바람이 먼저 다녀갔다. 매화꽃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눈길 닿는 곳마다 꽃 대궐이다. 청 보리 하늘거리는 밭이랑 사이에서, 늘어진 실버들 가지 끝에서 청량한 피리소리를 내기도 한다.

봄을 마중 나온 진달래꽃이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고 이어서 지천에 벚꽃이 꽃눈 되어 나부낀다. 곧이어 영산홍, 철쭉이 가슴 조이며 봄의 호명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꽃을 피우고 지워야 하는 4월은 내내 진통이다. 진달래라 부르려다 철쭉이라 말하고 벚꽃이라 말하려다 이내 영산홍이라 말할게 뻔한 내 기억력에 어느덧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내 기억처럼 시시때때로 다른 변명을 늘어놓으며 내로남불의 정석을 보이는 정쟁은 이미 국민들의 바람을 잠재우고 있다. 탁 탁 신의 한 수 바둑알로 포석하는 핏기 잃은 노인의 손끝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농부의 손길에도 꽃바람이 먼저와 자리를 틀었다. 봄을 탐한 물증이 없어 이를 다 소명하지는 못하지만 바람은 이들의 변명을 모른 체 할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일벌처럼 부지런히 움직인다. 꽃을 피웠다 이내 지우고 마는 나뭇가지도 목숨을 걸고 딱딱한 각질을 밀어내고 몽우리를 밀어 올린다.

그 지순한 진리를 자연은 한 번도 그르치지 않는다. 우리도 이 평범한 진리를 간과한다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매사에 올바른 사고와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의 생각이 자기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화를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인성이 메마르고 감정이 절제되지 못하여 충동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예부터 생각이 깊지 못하면 말과 행동이 경솔할 수 있고 따라서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말에 쉽게 부화뇌동하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요즘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철없는 재벌3세들과 일부 연예인들의 정제되지 못한 말과 행동, 그리고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변명만 늘어놓는 일부 특권층을 보면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현실에서 느끼는 괴리감으로 큰 혼란을 준다.

특권층의 부정 입학이나 권력층의 부정 취업들을 보면 순수한 젊은 가슴에 타오르는 열정을 퇴색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많은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 힘들게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해서 대출을 갚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가 하면 반면에 일부 금수저들은 마약과 권력형 채용비리를 저지르고도 뉘우침 없이 변명에 급급하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시민단체 대표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청년단체 대표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것이 없는 청년대책에 대하여 부처의 준비나 의지는 약하고 대처는 부족하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가장 용기 있고 패기 있어야 할 청년의 눈물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눈물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권층의 권력이 개인의 부와 명예를 지키는 곳에 사용되어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사실이 밝혀지면 변명에 급급한 행태를 보면서 과연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는지 참담한 생각이 든다. 그들의 변명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그때 다르고 지금 다르다.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다는 법이 어쩌면 특권층과 서민들에게 각기 달리 적용되는 것 같은 현실에 슬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차별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의 권력이 자신들의 부와 탈법에 악용되지 않고 국민들을 위해 올바르게 사용하는 좋은 무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월에 피었다가 사월에 지는 꽃들은 찰나에 꽃피울지라도 결코 변명하지 않고, 개화와 낙화는 해마다 같은 색깔과 향기로 일관한다. 이듬해에 같은 꽃을 피우기 위해 꽃을 버리고 잎을 피우고, 또 잎을 지우고 인고의 겨울을 이겨낸다. 이처럼 내려놓을 줄 아는 미덕이 채울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만들어지고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에 사악함을 없애는 것이 수신(修身)의 덕목이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요,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고 했다. 국민의 정서는 곧 민심이며 이와 결을 달리해서는 좋은 나라가 될 수 없다.

개화 시기는 짧지만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사월의 바람이 그러하듯이, 한 때의 관행이라 변명하기 보다는 하심(下心)의 길을 걷는 것이 따뜻한 봄날 같은 삶이라 재해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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