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생, 공생, 상생
[칼럼] 기생, 공생, 상생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19.06.0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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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울산시민신문] 넝쿨 장미가 월담하듯 오월도 어느새 넘어가고 알알이 박힌 청 매실이 상큼함을 더하는 한 해의 절반 유월이 시작되었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밥을 먹어야 배가 든든하고 하루를 지탱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도 '밥심'이라는 단어는 '밥을 먹고 나서 생기는 힘' 이라고 당당하게 정의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선조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밥에 대한 인심만은 넉넉했던 것 같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최고의 명대사는 단연코 '밥은 먹고 다니냐' 이다. 타인을 가장 따뜻하게 치유해 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지친 일상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 한 끼라고 주저 없이 말 할 수 있을 만큼 밥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래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일컬어 '식구'라고 한다.

지난 5월 14일 한국 영화 역사 100년 만에 처음으로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환상의 케미를 자랑하는 그의 콤비 송강호에게 경의를 표하며 트로피를 건넸다.

주연 송강호의 수상 소감에서도 "봉준호 감독이 가장 정교함이 빛나는 것은 밥 때를 너무 잘 지킨다는 거죠." 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아주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밥 때를 잘 지킨다는 것은 무엇보다 가장 행복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최고의 찬사이기도 하다.

또한 귀국 후 공항에서의 기자회견에서도 봉 감독은 집에 가서 충무김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최고의 순간에도, 좌절의 시간에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밥이 주는 묘한 힘이다.

아울러 봉 감독은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서로에 대한 예의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존엄에 대한 문제들을 건든다고 생각한다. 기생, 공생과 상생이 거기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 기생과 공생의 방법으로 제각각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기생식물은 살아있는 다른 식물 (숙주식물)로부터 영양분을 얻어 살아가는 식물이다. 예를 들면 억새에 기생하는 야고, 쑥에 기생하는 초종용,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등이 있다. 공생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관계이다. 악어새와 악어, 꽃과 나비가 이에 해당된다.

또 하나 공생의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반세기를 식구로서, 희노애락을 함께 한 현대중공업 노사와, 더불어 상생해 온 울산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 노사는 현재 회사의 물적 분할로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송철호 시장과 황세영 시의회 의장은 결연한 의지로 삭발까지 강행하며 본사의 울산 존치 당위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오늘날 현대중공업이 세계 제일의 조선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근로자들의 희생과 고난의 시간을 함께 견뎌낸 지역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울산은 조선 산업의 불황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상가는 하나둘씩 비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울산 경제의 난황을 방증하는 것이며 현대중공업 본사마저 이전한다면 그나마 버티던 지역 주민들의 생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급기야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다. 반세기동안 노사는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한 솥 밥을 먹었다.

이토록 긴 세월을 상생해 온 시간을 외면하고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극한 충돌로 치닫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물적 분할은 통과되었지만 앞으로 남은 과제들은 울산시와 노사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더 새롭고 더 단단하게 기반을 쌓아 올려 더 높은 지평으로 기업과 지역발전을 위해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매화가 매실이 되기까지, 배추김치 한 포기를 먹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공정과 노고가 필요한가? 농민의 땀과 흙, 태양과 바람과 비는 물론 수많은 손과 정성을 거쳐야 비로소 나에게 전달된다.

조선업계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 선 '현대중공업'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땀방울이 모여 그 결실을 맺었는지 울산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또한 현대중공업은 고 정주영 회장의 혼이 울산에 그대로 서려 있다. 작게는 개인, 나아가서는 울산시,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가 인정하는 현대중공업은 유일하게 본사를 울산에 둔 울산시의 자랑이기도 하다.  

 청 매실 알맹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모두 하나의 공동체로 엮여져 있다. 그래서 개인이 어려우면 이웃이 어렵고 그 지역이 어렵고, 나아가서는 국가가 어렵다. 더불어 사는 세상, 상생은 멋있는 성취와 행복의 근원이 된다.

다시 한 번 현대중공업 노사와 울산시가 알알이 결속되고 상생의 지혜를 모아 지역민 모두가 삶의 터전에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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