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개구리의 발상의 전환
[칼럼] 청개구리의 발상의 전환
  • 이두남
  • 승인 2019.06.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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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

[칼럼] 척박한 땅을 딛고 환하게 웃으며 햇살을 담아내는 접시꽃을 바라보면 괜스레 어머니가 떠오른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으로 사랑을 담아내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아련하다.

그 어떤 종교나 예술, 권력보다도 더 큰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은 따스한 눈빛과 온갖 정성이 담긴 어머니의 사랑이리라.

그러나 요즘은 넘치는 정보와 컴퓨터 게임, 일등주의, 물질만능에 눈길이 빼앗겨 그 옛날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유물처럼 여겨지고, 조건적이고 에고이즘적 사고로 무장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불행하게도 미, 중 무역전쟁도 이런 이기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양국의 불신은 더욱 악화되고 지역 간, 국가 간의 장벽 또한 견고하게 고착화 되어 간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발상의 전환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고이다.

어느 절의 주지스님께서 마당 한 가운데에 큰 원을 그려놓고 동자승을 불러서 "내가 마을을 다녀왔을 때 네가 이 원 안에 있으면 하루 종일 굶을 것이고 원 밖에 있으면 이 절에서 쫓겨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마을로 내려가셨다. 동자승은 매우 난감했다.

원 안에 있자니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하루 종일 굶어야 할 것이고 원 밖에 있으면 절에서 쫓겨나야 할 텐데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한참 뒤에 주지스님께서 돌아오셨다. 그런데 동자승은 하루 종일 굶을 필요도 없었고, 절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했던 것일까?

동자승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마당 한 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가져와 스님이 그려 놓은 원을 쓱쓱 쓸어서 깨끗이 지워 버렸다.

원이 없어졌으니 원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어서 밥을 굶을 필요도 없었고, 원 밖에 머문 것도 아니니 절에서 쫓겨날 일도 없었다. 발칙한 동자승은 기지를 발휘하여 원을 지우고 자유롭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원을 지니고 살아간다.

물질이라는 원, 명예라는 원, 욕심이라는 원, 미움이라는 원, 권력이라는 원, 지역감정이라는 원 그 밖의 여러 가지 원에 갇혀 자유롭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장님에게 맡기라는 옛말이 있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는 것이다.

축적된 경험에서 얻은 지식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생산 할 수 있으며 이는 누구나 공유하는 병폐다. 따라서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변화에 잘 적응하고 다양하고 유연한 합리성을 배워야 한다.

청개구리는 거꾸로 생각하기에 비가 오면 울 줄 안다. 과거에는 청개구리를 그저 말 안 듣는 아이에 비유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남이 보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을 발견해 내고 남들의 생각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신만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의 글을 쓰는데도 상대의 입장에서 읽혀지는 객관화가 필요하다. 하물며 단체나 한 나라의 중대한 결정은 그 대상이 되는 상대의 고통을 수반하는 실행은 피해가 야기되어 반격이나 분쟁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같은 사물과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산은 낮은 들판에서 보아야 그 높이를 알고 들판은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아야 그 넓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의 편견이나 관습적인 통념이 언제, 어디서나 옳다는 생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거꾸로 생각하거나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또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며 대인관계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삶을 객관적으로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주관적인 틀에 박힌 관념의 경계선에 정착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요즘 정치에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정치는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에 색깔을 덧씌워 같은 방향으로 내달리는 열차와 같다. 각자 색깔이라는 원에 갇혀 자신의 색은 보지 못하고 서로 남의 색깔만 탓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색깔론에 국민들과의 괴리감만 깊어가는 실정이다.

다양한 색깔로 행인들의 기쁨이 되어주는 접시꽃처럼, 세상살이 역시 조금만 객관적이고 청개구리의 관점에서 응시한다면 주체가 결코 분리될 수 없고 상대와 하나 되어 같은 방향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의견과 지혜를 한 데 모아 조화로운 사회가 발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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