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을 동화
[칼럼] 가을 동화
  • 이두남
  • 승인 2019.09.03 1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두남 대표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던 폭염은 처서가 지나자 한풀 누그러지고, 귀를 찢던 말매미 소리도 이명처럼 멀어지고 있다. 계절의 순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며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공원 잔디를 밟으며 걷다보면 발밑에 봄부터 자란 풀들이 촉촉하게 발을 감싸며 가을 쪽으로 나를 옮겨 놓는다. 가을이 오기 전에 이 빗방울이 우리의 마음속 때를 말끔히 씻어 주고 노란 은행잎에 물들어 동화 같은 일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미국의 제 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은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가난 때문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열 살에 양복점에 들어가 성실히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결혼 후에 아내에게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그 뒤 정치에 뛰어 들어서 주지사, 상원의원을 지낸 후에 링컨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되었다.

링컨이 암살된 후 미국 17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자 상대편 후보가 "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는다."며 비아냥거리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며 수천만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석가와 예수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의 힘은 학력이 아니라 긍정의 힘과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입니다."

이 말이 나오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는 수많은 역사책을 통해 과거를 읽고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으로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720억 달러에 사들여 러시아의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고 애물을 보물로 만든 인물이다.

존슨 대통령의 긍정의 힘과 대중을 움직이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반면 우리나라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대통령의 취임사와 같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면 누구나 노력하면 용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는 하루아침에, 한마디 수사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요람에서부터 면밀히 학습하여 몸에 배어져야 가능하고 이를 반드시 지키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권력을 이용한 반칙과 편법, 그리고 얼룩진 스펙 쌓기로 청년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온갖 반칙과 편법으로 스펙을 만들어 상대적인 상실감을 던져주는 것보다 마음속에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는 삶이 긍정적이고 나아가서는 대중을 사로잡는 능력으로 그 힘을 발산할 수 있다. 그것은 마음속에 자라는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 효율과 능률만을 지향하는 경쟁의 거친 현실 속에서 내 영혼을 잠시 쉬게 하고 일깨우는 가슴속의 고요한 이야기들이다. 작고 희미한 동화이지만 큰 힘이 작용하여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현실 속에서도 마음속에 동화를 간직한 사람은 자유롭고 순수하다. 동화는 믿음이요, 배려이고 따뜻한 정이기에 오염 속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정치적 수단이나 경제적 도구로 전락시켜 능동성과 창의성을 제약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나라 교육으로 어려운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펙 보다는 가슴에 동화 이야기 하나씩 안겨주는 것이 절망의 순간이 온다 해도 긍정과 창의력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는 힘이 될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다운 인격이 형성된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아니 대한민국이 소요스럽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의 기초를 세운 헌법에서 우리 스스로가 다짐한 헌법정신이 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원의 사고가 정립되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살리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살리는 정치고 우리의 미래인 청년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정치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마음의 때를 조금씩 지우고 그 여백에 은행잎을 닮은 노란 동화가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