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실의 계절을 거닐며
[칼럼] 상실의 계절을 거닐며
  • 이두남
  • 승인 2019.12.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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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이사

가을의 짙은 질감을 떠나보내고 무채색 겨울과 마주했다.

콧등에 스치는 아침바람은 맵다가 붉고 은행나무는 간밤 영하의 날씨에 아끼던 손바닥들을 와르르 놓아 버렸는지 발등에 노란 이불을 덮었다.

변해가는 자연의 순리에 꼼짝없이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어차피 떠나보내야 한다면 절정의 순간을 잊지 못하도록 아름다운 작품 하나를 남겨 놓는다.

산책 중 바람에 바동거리며 가지 끝에 붙어 있는 은행잎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한 때 가장 붉었던 기억에 천착해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을까?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이 잎은 어쩌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준비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지나치는 사람들과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있는 손을 놓아야 하는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세상 모든 마지막 잎새의 준비된 안녕과 그 결연한 의지를 응원한다. 

또한 영광스런 결실을 이루어낸 후의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해서 햇볕이 골고루 스며들고 더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하여 고통을 묵묵히 이겨낸다.

우리도 함께 했던 정든 사람을 갑자기 보내야 하거나 혹은 오래 지키던 자리를 내 줘야 할 때가 있다.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무욕의 삶을 살아가려는 소박한 꿈은 곁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예쁘게 가지치기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절정의 순간을 붉게 물들이고 떠나려는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것들을 상실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다. 결국 삶과 상실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슬픔을 겪은 후에 더 다져지고 거기에서 뭔가를 배운다. 그 배움을 통해 또 다시 다가올 얘기치 못한 슬픔 앞에 용감해지기도 한다. 실패와 슬픔뿐인 기억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성장하게도 한다. 성공과 기쁨뿐인 기억은 나 자신을 실제보다 더 지혜롭다고 믿게 만들 것이다.

즉, 슬펐던 경험과 기뻤던 경험 모두 우리에겐 필요하다. 수많은 슬픔과 아픔이 밀려왔음에도 그것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것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나무든 사람이든 가장 붉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특히 가슴이 공허해지는 상실의 계절에는 자연도 사람도 모두 불안정하고 우울증을 피해 갈 수가 없는 것 같다.  

人生의 生은 소牛에 하나一 자를 쓴다. 즉 사람은 한 평생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것이고 한번 지나간 그 외나무다리를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이다. 돌아서려고 몸을 돌리면 소가 외나무에서 떨어지듯 떨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겨울 강가를 건너듯 언제나 조심스럽게 건너야 하고 되돌릴 수 있는 기능이 없다. 싫다고 건너 뛸 수도 없고 지나친 욕심으로 과속 할 수도 없고 또한 힘들다고 그 자리에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는 것이 人生이다.

짙은 가을빛과 달리, 겨울 산길은 묵언수행 중인 곰솔나무와 상실의 무채색을 울컥 토해낸 듯 떨어져 쌓인 낙엽 타는 냄새로 상실의 허무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

어쩌면 허무한 계절을, 차디찬 바람을 이기고 지나쳐야 약동하는 봄을 맞이하는 것을 알기에 모든 나무도 풀도 숨을 죽이며 몽우리를 데워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거센 비바람을 이겨낸 나무만이 대풍에 견디며 큰 대목으로 자란다.우리도 아픈 과정을 통해 인내하는 마음이 자라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말없이 꼿꼿하게 서 있는 곰솔나무에 가만히 기대어 본다. 말 할 수 없는 위엄이 등 뒤로 느껴진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상실의 시간을 보내고 견뎌내고 그 시간만큼 성장했을까?

삶은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가운데 발전을 이뤄 나간다. 그래서 언제나 꿈을 꾸며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상실의 계절은 수행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 친구는 사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꿈을 가지고 있었고 한 꿈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꿈을 꾸며 살았어. 그 친구를 통해 많은 사람이 꿈이란 어떻게 꾸는 것인지 더 멋진 세상은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지. 그 친구 이름은 바로 월트 디즈니야. 하지만 한 가지는 꼭 명심해라. 네 꿈은 반드시 네 꿈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꿈이 네 것이 될 수는 없어. 그리고 꿈이란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키워나가는 것이다."

침 스토벌의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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