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또는 불연속의 경계 / 김기철
연속 또는 불연속의 경계 / 김기철
  • 이시향
  • 승인 2020.02.24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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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할아버지의 튼실한 울타리를 박차고 무지개를 좇아 떠났던 아버지는 이내 돌아와 어린 양들을 풀밭에 자유롭게 풀어 놓았다.
살갑게 돌본 것도 없었지만 아버지의 어린 양들은 다들 무탈하게 잘 커 주었다.
때가 되어 각자의 무지개를 좇아 하나 둘 떠날 때에도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일이 고작이었다.

어린 양들이 예 놀던 풀밭과 집의 경계는 비바람에 쓰러진  울타리의 잔흔으로 어림짐작이 가능했지만 그것마저도 명확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공이 합일되던 날 맥없이 주저앉은 할아버지의 울타리는 대지의 자연으로 돌아가 연속 또는 불연속의 하나의 티끌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먼산 바라기 쉼 없던 아버지의 검붉은 노을이 나뭇가지 끝 철 지난 잎새처럼 너울거릴 때마다
어머니의 들숨과 날숨이 들녘에 땅거미 지고 이른 아침이면 군불 아궁이의 매캐한 연기 속에 한숨이 자지러졌다

울타리를 박차고 언덕 너머 저 멀리 무지개를 좇아 둥지를 떠난 어린 양 한 마리, 무탈하게 되돌아오기만을 바라던 아버지의 봄과 여름은 길었고, 가을은 유난히 짧았다.
탕아처럼 되돌아온 어린 양 한 마리 내내 보듬던 어머니의 가을도 아버지처럼 그닥 길지는 않았다.

일곱 색 무지개는 여전히 하늘에 있었지만 무지개를 좇아 울타리를 박차고 떠날 어린 양들의 울음소리는 더이상  울타리 너머 그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안팎의 경계는 유의미하거나 무의미한 시공 속에 애처롭게 흔들리다 순서 없이 흩날리는 잎새와 같이 연속성의 선 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울산시민신문=이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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