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앞에서 / 박용
장미 앞에서 / 박용
  • 이시향
  • 승인 2020.04.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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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몸은 독성이 있어 좋아
부드럽고 나른하게 으깨지는 나는
중독이 세습된 관음자(觀淫者)

독을 마시고 싶은 날은
맨살의 문을 열고
죽음을 생각하며 장밋빛
욕정에 사인하지

당신의 몸은
색의 깔 이 있어 좋아
비린 치정을 타설하고
거푸집마다 청춘을
욱여넣었지.

한 모금의 사랑쯤은
불륜이어도 좋아
농염한 밀회는
망측하지만

당신의 몸이 표정을 지을 때
당신의 몸이 색깔을 품을 때
나는 독성을 빨며 뜨거운
寂滅(적멸)을 생각하네.

적멸을 생각할 때 現生(현생)은
자지러지는 육신을 짓밟으며
살아 펄펄 오는 生滅(생멸)인 것을
숱한 낭설의 존재인 것을
알았네

原始(원시)로 기자
살아있음이 경이로운 곳
모로 누운 시간을 일으켜 세워
원시로 가자

몸이 허물을 벗고
욕망을 놓을 때 마음마저
오롯이 풍화되는 것

용맹했던 세월아
발끝을 무질러오는 시간아!
바람이 스쳐 간
기억의 언저리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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