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크레인 / 윤석호
타워 크레인 / 윤석호
  • 이시향
  • 승인 2020.04.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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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사장에 허수아비 서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섞어
빌딩 하나 키우고 있다
쉴 새 없이 줄을 감아올리지만
보잘것없는 먹이는 배고픔만 키워 놓는다
해가 기울고, 작업자도 허기에 지쳐 흩어진다
젖을 물려 애를 재우듯
어둠을 물려 지친 공사장을 재운다
담을 데가 없어 고독조차 머물 수 없는 밤
등을 숙이고 팔 한번 편히 내리지 못한다
허수아비에게는 관절이 없다

2
도시 한복판 욕망의 낚시터
땅 껍질부터 벗겨내고
콘크리트 심지를 두들겨 박아 잠을 깨운다
꿈의 높이만큼 망루를 세우고
수평의 평정심으로 낚싯대를 펼친다
한번 시작되면 멈추지 못하는 집착
땅속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가
이제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았다는 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바다가 물고기 몇 마리로 낚시꾼을 낚은 것이다

3
숲을 쓰러트리고 나무를 토막 낸 공사장에서
빌딩들이 자라고 있다
불안했던지 빌딩마다 쇠 십자가 한 개씩 세워놓았다
숲을 위로하소서
그 숲의 토막 난 나무를 위로 하소서
나무를 토막 낸 경솔함을 용서하시고
그 위에 자라나는 빌딩 또한 용서하시며
다만 몰려올 사람들을 축복하소서
십자가의 기도가 흙먼지처럼 내려앉는다
숲이 사라진 곳에 사각의 봉분들이 자라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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