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눈이 부시게
[칼럼] 눈이 부시게
  • 이두남
  • 승인 2020.05.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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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대표이사

[울산시민신문] 익숙했던 오월의 향기는 마스크로 가려져 그 싱그러운 내음을 온전하게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가려진 후각 대신 시각이 더 살아나 오월의 색감이 더 밝고 선명하게 투영된다.

바람의 생식기로 잉태한 초록의 무성한 잎들은 종일 팔랑거리며 쉼 없이 움직이는 아이의 보드라운 손가락을 닮았다. 안타까운 사회적 거리두기 시점에서 구원인 듯 손짓하며 내민 천 만 개의 손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오래 전 이 맘 때면 보리 이삭은 제법 배를 불룩하게 내 밀고 누런 색깔로 수확의 날짜를 기다리지만 보릿고개 절정에서 허기를 바라보던 부모님의 인내 또한 절정에 달한 상태였다.

수시로 보리밭에 나가 영글어 가는 보리 이삭을 보며 잠시 걱정을 덜어내고 희망을 싹틔우던 시절이 있었다. 이 때 이랑사이에서 산란을 위해 알을 가득 품던 종달새가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푸드덕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마치 오월의 아이들이 꿈을 펴는 형상을 본 듯 모든 걱정이 날아가 버리곤 했을 것이다.

온갖 걱정과 가난으로 어머니의 졸라맨 허리띠가 자꾸만 가늘어 지는 날, 눈치도 없는 이팝 꽃은 저녁이면 더 하얗게 고봉으로 헛배를 불려 주었을 것이다.

바람결에 후드득 이팝 꽃이 하얗게 떨어진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꽃잎을 잡으러 바람 따라 흘러간다. 무지개를 잡으러 저 산 너머를 동경한 소녀처럼 어느덧 훌쩍 성인이 되고 눈가에 무지개가 하나 둘 늘어간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꽃들이 모여 무지개너머 어디론가 방랑을 떠난다고 하던 천진난만한 동무의 말이 생각난다. 그들도 바람의 힘을 빌려 세상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나보다.

눈을 뜨자 여전히 푸른 오월, 모두가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바람은 눈치 챘는지 반나절 햇살도 시처럼 달콤하다.

바람 자고 느슨해진 오후에 사람간의 간극처럼 적당히 좋은 시간도 있다. 마스크로 가려졌던 일상이 조금씩 열려가는 느낌이다.

2주간의 자가 격리에서 해방된 미국 유학생은 격리에서 해지되자마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오월의 푸름과 눈이 마주쳐 황홀경에 빠졌나보다. 다만 안전하고 걱정 없이 격리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주신 사회구성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정부에서 권장하는 행동지침은 모두 숙지하고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졌다고 한다.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오월의 강산과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지지 않을 국민성을 가진 강한 나라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정부의 방역체계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했지만 아직도 방심할 수 없는 이 봄의 간극을 바람도 난처한지 사회적 간격을 주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임자의 현명한 판단이 따라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크리시스의 일반적 의미는 판단, 재판의 결과, 선택 등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는 더 거슬러 올라가 시브 (sieve) 라는 말과 관련된다고 한다. 시브는 '체로 거르다'라는 뜻이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좋은 것,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체로 쳐서 걸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활동이었다. 여기에서 오늘 날 판단 (judgement) 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적 위기를 직면하게 될 때 위기를 대처할 예측 능력과 현명한 판단을 해야 모두가 생존할 수 있음을 우리는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는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위기는 위장된 기회라고도 한다.

이제 K방역을 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새 전략은 물론 국가경제와 개인의 생업이 다시 정상으로 가동되고 국운이 융성해 질 수 있도록 모두 한 마음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19 극복 사례를 세계인들은 집중 조명하고 대한민국을 재조명 하고 있다.

21대 총선이 그러했고, KBO에 이어 K리그가 비록 무 관중으로 개막되었지만 각국에서 보도되며 세계인이 주목했다.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어 현재 대한민국의 행동 하나 하나가 지구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셈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또 하나는 가장 낮은 곳에 피어 눈에 띄는 민들레다. 노란 색깔로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다 금방 하얀 씨방이 되어 날아갈 채비를 한다.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잘 만나면 100km를 날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비결은 민들레 씨방이 빛이 바뀔 때마다 포착되는 씨앗과 그 속에 숨어 있던 곤충들의 활동이 마치 우주 속 행성처럼 신비롭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오면 씨앗들은 서로의 인연을 끊고 각자 새로운 세상으로 훨훨 날아간다.

바람의 생식기는 유감없이 힘을 발휘하여 민들레 씨앗들을 지상 어디든 뉘어 제2의 탄생을 꿈꾸게 한다. 바람을 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민들레 씨앗처럼 눈이 부시게 푸른 희망의 바람을 불러 모아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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