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루의 품삯
[칼럼] 노루의 품삯
  • 이두남
  • 승인 2020.07.0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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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울산시민신문] 초여름의 염천을 감고 겁없이 오르는 푸른 줄기마의 손아귀 꿈은 무엇이길래 저토록 휘어 감고 높이 오르는 것일까.

지금 텃밭에서는 호명이라도 한 것처럼 오이, 토마토, 가지, 수박, 양배추, 고구마가 손을 번쩍 들고 외친다. 식탁에 오를 준비가 다 되었다고. 그러자 호박꽃이 한 마디 거든다.

못난 것들이 뭘 안다고 떠들어. 온전한 오이 하나, 그 옆에 토실한 토마토, 진한 줄무늬 동그라미를 그어가며 배를 불리는 수박처럼 무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속을 꽉 채우는 그들을 닮고 싶다.

"사람"과 "사람이 된다"는 사이에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태어날 때 사랑받고 죽을 때도 사랑받을 수 있도록 그 중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즉.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 간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유래된 속담은 이 시대에 많은 울림을 준다.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고, 컴퓨터는 살 수 있지만 두뇌는 살 수 없다. 명의에게 고가의 진료를 받고 좋은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다.

편법으로 높은 지위를 얻을 수는 있지만 존경은 받을 수 없다. 성형으로 얼굴을 고치고 명품으로 치장한다 하더라도 내면의 아름다움은 살 수 없다.

사실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더 많다. 돈으로 안락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숙면은 사지 못하고, 고가의 아파트는 살 수 있지만 가족의 화목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일을 하는 인부는 살 수 있지만 친구는 살 수 없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돈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재산은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고 했다. 정신보다 물질이 우선하면 배타성이 두드러지고 경쟁과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현재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속으로 인한 갈등도 많이 가지려는 물욕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로 인한 갈등이나 타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 차례 장마를 거치면서 서로 엉킨 채 밭의 경계를 뒤덮는 고구마 줄기를 보며 "노루의 품삯"이라는 시가 떠 오른다.

'글쎄. 뒷산 노루가 농사를 지었다 하네. 세 마지기 고구마 귀 밝은 노루가 드나들며 씨알을 키웠다네. 깊은 밤 마을이 깜빡 졸 때 한 이랑 두 이랑 야금야금 순을 따 먹고 발 잰 짐승이 극진히 고구마 밭을 섬겼다 하네. 무릎 꿇고 지은 입 농사에 씨알이 굵어 그 해 농사는 포대 포대 재미를 봤다는데. 이듬 해 주인이 울타리를 쳤네. 기둥 박고 그물 치고 문을 달았네. 달빛도, 새 울음도 높은 담을 넘지 못해 날로 밭 그늘이 무성했네. 밤마다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기고 배고픈 노루가 돌아간 뒤 넝쿨 순이 남실남실 고랑까지 기어갔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넝쿨을 걷어내고 두둑을 헐었는데. 그러게, 실 뿌리만 달려 나왔네. 이파리가 땅 기운을 빨아먹고 밑은 허당이었네. 알고 보니 노루의 품삯은 이파리였네. 짐승에게 품삯을 아낀 농사는 암만, 헛농사였네.'

노루에게 고구마 이파리를 양보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을 엿보며 온기 넘치는 삶의 징표를 발견한다. 이렇게 투명하고 정갈한 삶의 편린들이 모여 풍성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구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나친 풍요 속에서 사람들은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하고 사람다운 사람의 향기를 갖게 한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노루에게 이파리를 양보하고 씨알 좋은 고구마를 얻듯 조금 더 가지려는 욕심보다 나누려는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이 모여 달빛도 새 울음도 넘나드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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