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부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다 / 김태운
말로부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다 / 김태운
  • 이시향
  • 승인 2020.11.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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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동안 말을 잃은 말이 되어 어느 오름 기슭의 말을 훔치고 있다
저 말들은 정말 말을 못할까?
물론, 아니겠지
그건 사실 잘난 인간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까마득한 오독이겠지
잠시의 마이동풍이나 우이독경 같은 귀청으로 짐작건대
말은 콧바람으로 새는 휘모리장단으로 말하겠지
그 소리의 길이로 이런저런 말을 하겠지

가령, 입을 다물고 히잉거리는 소리가
기쁜 말이라면
허연 이빨을 들어내고 히이잉거리는 건
노여운 말이겠지
나아가, 혀를 날름대며 히이이잉거리는 소리가
슬픈 말이라면
혓바닥까지 내비치며 히이이이잉거리는 건
매우 즐거운 말이겠지
이를테면 히히덕거리던 말이랄까
그 말에 의심이 들거든 테우리에게 물어보라
으려 으려려 으려려려 으려려려려로
종일 대화를 나누던


2.

말은 재갈을 물려서도 말을 한다
눈망울의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끝내 불통이면
발길질 행동거지로 말한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야
마스크를 낀들 말을 못할까
설마, 희로애락까지 못 느낄까
혹은, 숨길 수 있을까

마침, 귀신 같은 까마귀 얼씬거린다
개씹 난 늙은 수컷의 눈깔
그 희끗한 몰과 마주치더니
까악 까악 날아간다
저리로 얼른 꺼지라는 말
금세 알아들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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