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힘들었던 2020년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새해가 밝았습니다. 아니 새해가 움츠렸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이 피는 것도 계절을 구분하는 것도 바람의 탓이라 여겨지는 날카로운 계절입니다.
언 몸을 호호 불어가며 새해 첫 날의 해돋이에 간절함을 실어보던 날도, 한 해를 마무리 하며 33번 울리던 재야의 종소리도 비대면 저편으로 퍼져가 이상한 세상에 정박한 느낌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해로 기억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절차탁마’에 내포된 뜻처럼 한 소쿠리에 담긴 감자가 개울물에서 서로 부대끼며 흙이 씻겨나가고 껍질이 벗겨져 빛이 나듯 우리도 함께 정을 나누고 어우러졌을 때 가장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만 작년 한해는 그렇지 못한 채 마무리 되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새 달력을 걸고 새로운 결의 몇 줄을 적어봅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신년의 일출에도 기댈 수 없는 소망을 꾹꾹 눌러 담습니다. 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 하나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할 수 없는 세상에 놓인 지금이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마음에, 또 머리에 오래 머물면 가까이 보이고 또 이루어지리라 최면을 걸어봅니다. 겨울나무로부터 봄의 꽃이 피듯 겨울 나무의 의지와 고난 극복의 열정 없이는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래도 다시 신년의 꿈을 꿉니다.
문득 그리스 신화가 생각납니다. ‘판도라 상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판도라는 호기심이 발동한 제우스가 어느 날 열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상자를 열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상자 안에 있던 죽음과 질병, 질투와 증오 등 수많은 해악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여러가지 재앙과 부딪히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상자 안에는 ‘희망’ 하나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희망’의 힘으로 절망속에서도 꿋꿋이 견뎌내며 고통스러운 난국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은 모든 고난을 뚫고 미래를 향해 가는 힘이고 빛입니다. 현실이 어둠 속에 있을 때 희망은 더 빛을 내듯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전환을 이루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스크로 가려진 혼란을 잠재울 수 있도록 내면을 강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멀어진 마음과 몸을 다잡고 사람과의 거리로 불안정해진 정신과 의욕 상실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온정을 되찾고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냉기를 녹여 서로에게 치유가 되는 거리에 서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단절되었던 마음의 거리를 다시 이어 ‘우리’라는 결속된 단어를 먼저 생각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민들의 한숨과 아우성이 끝나지 않은 채 시작하는 새해지만 다시 양광의 설렘 가득한 한 해로 출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에 ‘공명지조’에 이어 지난 해 ‘아시타비’가 선정되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요스러운 세상을 견뎌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민생을 챙기기에도 부족한 시기에 남의 탓만 하고 있는 모양에 씁쓸함을 금지 못합니다. 올해가 저물 즈음에는 새해 일출처럼 밝고 희망찬 글귀가 선정될 수 있도록 서로 화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익숙했던 일상을 마주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낯선 것도 반복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마스크의 공포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 국민의 자랑스러운 근성이 되살아나 K방역의 위대한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적은 가능한 일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우리 모두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활짝 웃을 수 있는 신축년 새해가 되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