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1월
희망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1월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1.01.25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쭈뼛한 적막을 깨는 이 누구인가? 솔마루 길 허리쯤 꺾인 곰솔나무의 아우성을 바람도 모르는 척 외면하며 지나간다. 과거의 일들은 자기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기억에 없는 것처럼 담담하다. 어느 것 하나도 호락호락 하지 않은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귀 끝을 노리는 칼 바람도 악착 같은 코로나19도 먼 길을 날아온 이들을 맞는 내 일상에 시종일관 위태로운 방어 태세다. 얼굴을 덮어버린 마스크처럼 우리의 시름도 덮어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희망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요즘처럼 간절하게 희망을 기다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이 조급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솔마루 길 너머로 내려다 보이는 저수지의 수면이 거울처럼 단단하게 얼어 붙었다. 햇살처럼 환하게 비추던 그 풍경이 되살아 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발 밑에 밟히는 낙엽 같은 시간이 부스러진 채 일어난다. 잃어버린 것이 청춘만이 아니듯 지난 봄에 만난 사람과 이미 떨쳐버린 아스라한 기억들이 take out된 까페처럼 우두커니 밀려온다.

또 한 해를 공평하게 배급 받아 나에게 소환된 시간과 그 경계에 드리워진 수많은 계획들이 이들을 폭식하 듯 까먹어 버릴 것 같아 겁이 난다. 발 밑의 솔잎이 바늘처럼 뾰족하게 드러나자 웃자란 몇 가지만 붙들고 곧게 서 있는 나무의 고해처럼 그 간절함에 봄은 성급하게 찾아 올 것 같은 기대가 앞선다. 그리하여 잠시 형체를 숨겼다 드러내는 여백 없는 풍경과 지난 해의 정겨운 색감으로 기필코 돌려놓고 말 것이다. 암굴왕 넬슨 만델라도 흑백 갈등 없는 세상을 외치다 26년간 감옥살이를 하지만 마음은 늘 저 넓은 창공에 두고 희망의 날개를 접은 적이 없다고 한다.

리젤 뮬러는 희망이란,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회전하며 출항하는 녹색 천사의 날개에 올라타고 불이 켜지기 전 어두운 구석에서 서성이며 우리가 서로를 저버리지 않도록 약속하게 하는 치료제라고 했다.

올해만큼은 긴 터널의 어둠에서 벗어나 우직하고 성실한 소의 근성으로 우리를 감싸 안을 수 있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참을 걷다 길 옆의 태풍에 꺾인 나무를 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고유함을 지닌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와 사철 푸른 소나무가 그러하고, 천 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는 오동나무가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렵고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해 나갈수록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이 일 년을 훌쩍 넘겨버린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좌절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먹구름 뒤에도 분명 찬란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음을 잘 안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바꾸었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들이 바뀌었을 것을/ 거기에서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게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다 보면 세상 전체가 바뀌었을지. 영국 런던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의 어느 묘비명처럼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내 둘레에서 소리없이 일어나는 변화를 잘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갖는다면 평화롭고 기쁜 시간이 허락될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 울산시는 전시컨벤션센터 유에코 (ueco), 미래 산업을 주도 할 경제자유구역청, 내일(job)이 있는 삶을 위한 청년일자리센터 등 새로운 동력을 불어 넣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한껏 움츠렸던 울산이 새로운 에너지를 수혈 받아 기지개를 활짝 펴고 시민의 시름을 떨쳐 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딱딱한 아스팔트 틈에서도, 절벽 끝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는 곳에서도 당찬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조금은 답답하고 비극적인 현실이지만 인내하고 노력한다면 희망은 봄꽃처럼 반드시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