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독백 / 김기철
어느 날의 독백 / 김기철
  • 이시향
  • 승인 2021.02.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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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안의 불덩이 하나를 끄집어 내어
시린 손을 비벼 얼음장 같은 두 볼을 감싸쥐고
나는 나를 위로했다

종일은 슬퍼하지 마라고 거듭 다짐도 두었다
언제 한번 맘 편한 적 있었느냐며
또 위로를 건넸다

낯 모르는 사람과 멀찍이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가슴 속에서 갓 끄집어낸 불덩이의 온기를 나누며

빈 하늘을 망연히 쳐다보다가
무엇을 들킨 사람처럼 멋쩍은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멎은 듯 흐르는 강물에 내 종일의 반을 띄우고
내일을 맞으로 불 꺼진 집으로 또 돌아 간다

그래, 사는 거다
그래, 나만 힘든 건 아니잖아
그래, 사는 거야

미처 귀환하지 못한 독백이 강 건너 산마루를 휘돌다
거짓말처럼 다시 돌아와 내 품에 안긴다

난데없이 불어오는 강바람에
멀쩡하게 지나가는 취객보다 내가 더 많이 흔들리며
집으로, 불 꺼진 집으로 간다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의 행복을 잊은 사람들이 분주히 둥지를 찾아 들고
키 높은 나뭇가지마다 점점이 불이 켜지고
어두운 것들이 창가에 옹송그리며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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