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이두남
  • 승인 2021.05.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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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청 보리 넘실대는 언덕 위로 봄비가 내린다. 오월의 푸른 하늘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며칠을 뿌려댄다.

겨울 동안 부풀어 오르던 보리밭 이랑 사이로 종달새가 보금자리를 틀어 알을 낳고 지지배배 하늘 높이 날아 오르며 꿈을 키우는 시절이다. 청 보리 밭 옆으로 무논이 눈에 들어온다. 겨우내 숨 고르기를 한 논에 봄비를 가두어 곧 모내기를 시작할 모양이다. 이를 놓칠세라 다리와 목이 긴 백로가 먹이를 찾는 모습이 평화롭다.

유년시절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신작로 옆으로 아이 키보다 더 큰 코스모스가 연상되듯 언덕에 핀 금계국이 황금빛 봄비를 머금고 눈길을 끌어당긴다. 보라색 풀꽃 반지 하나 끼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빗줄기 따라 걷는 내 발길 어느덧 강변을 지나고 있다.

강물은 언제나 변함없이 흐르고 오월의 바람과 빗줄기는 여전하다. 변한 것은 감상에 젖은 내 마음과 얼굴을 가린 원시안 시력이다.

언제부턴가 내 가슴 언저리에 기다림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다가온다.

이미 몇몇 나라에서는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는데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가게 앞 ‘임대’ 라고 쓰여진 글귀가 서민의 가슴을 짓밟고 지나간 상흔처럼 되살아나 삶이 얼마나 고된지 방증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그 결과를 지켜보며 간절함을 담아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의, 공정, 평등에 상실감을 느낀 국민과 미로에 서서 꿈을 찾는 2030 청년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줄 방법은 과연 있을까? LH 사태, 내로남불로 점철된 현 시국을 비틀어 보려는 청년들은 비트코인 한방에 인생역전을 시도하려는 한탕주의가 팽배 해지고 있다. 이미 예견된 가상화폐의 중독성과 벼랑 끝 낭패를 예견하고도 방관한 정부의 뒤늦은 대응이 청년의 절망을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부동산 정책에 실망한 청년들의 허기가 투신하 듯 비트코인으로 옮겨 가는 위기를 방관만 해야 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비에 젖은 오월처럼 숙연해 진다.

그러나 신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과 시련을 분배해준다고 했다.

아픔과 고뇌 그것 또한 삶이고 성장통이 아니겠는가?

비 그친 사이로 간간이 엷은 햇살이 오월의 언덕을 쓰다듬고 있다. 굽어 흐르는 태화강 물줄기와 빗줄기를 털어낸 서쪽 하늘로 노을빛이 물들면 봄비를 담은 논은 이내 황금색으로 비친다.

이 풍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 곁에 이미 풍년이 와 있는 듯한 기쁨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힘이 솟는다.

비록 우리 앞에 있는 봄날은 시계의 움직임에 따라 멀어지지만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우리는 금계국처럼 환하게 황금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나 금계국 저 편 언덕 너머로 연일 들려오는 슬픈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미얀마의 군사정부 아래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피 흘리는 청년들의 외침이 우리에게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5,18 민주화 사태를 재연하는 듯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민주화의 움직임에 위협을 받고 있는 그들의 세 손가락이 꽃이 되어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물기를 떨쳐내고 다시 고개 내민 금계국처럼 미얀마 국민들의 눈물이 그치고 자유의 봄이 찾아와 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우기를 간절히 바라며 세 손가락을 높이 들어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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