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리며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을 기리며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1.08.2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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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언제부터 피었는지 수줍은 듯 연분홍 연꽃이 벌써 지고 있다. 그 위로 떨어지는 가을 장마가 바람의 온도를 바꿔 놓았다.
연꽃은 다른 꽃들과 달리 꽃과 열매가 동시에 성장하는 보기 드문 식물이다. 그래서 생명을 여는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갖춘 ‘인과구시 (因果俱時) 법리의 비유에 인용되기도 한다.
 진흙탕 속에서도 고결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탁한 현실의 흙탕물에 휩쓸리지 않는 연꽃처럼, 소나기 같은 비난과 어려움에도 젖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는 연 잎처럼, 수렁 같은 고난에도 쉽게 지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로 당당히 한 생애를 살아가신 위인을 떠올려 본다.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는 박상진 의사의 삶은 일제강점기의 위협에도 오직 나라를 되찾으려는 청정한 정신으로 여름 끝자락의 연꽃처럼 선명하게 피어난다.
울산에는 송정 박상진 호수공원이 있다, 가끔 이 공원을 찾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호수가 늘 푸르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정자 바다에서 무룡산 너머로 스며드는 상쾌한 바람 때문이다.
둘째는 이 호수를 걷다 보면 대한민국 광복회 회장 박상진 의사가 사형 선고 직전에 쓴 옥중 절명시와 김좌진 장군에게 보내는 전별시를 읽으며 가슴 먹먹한 애국 충절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호수 둘레길에 음각의 벽화로 새겨진 박상진 의사의 생생한 활약 모습을 보며 걷는 내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호수 인근에는 그의 생가가 있어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흔적이 연꽃처럼 선명하다.
얼마 전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 특별 기획전이 울산 박물관에서 열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관람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사법관으로 입신 출세하여 개인의 영달과 행복을 위해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이 일제 식민지하로 전락하자 나라를 위해 험난한 길을 택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한 몸을 바쳤다.
집안의 모든 곡물과 땅을 팔아 광복군 비용으로 부담하다 집안은 몰락하였고 모친 상을 당해 집을 찾았을 때 일본 순사들의 포위망에 걸려 그 길로 대구 형무소에서 38세의 일기로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토록 염원했던 조국 광복의 뜻을 이루지도 못한 채 쓸쓸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순국 당일 지은 유시를 보면 나라를 잃은 슬픔과 나라를 구하지 못한 비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시 태어나기 힘든 이 세상에 / 다행히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건만
이룬 일 하나 없이 저 세상 가려 하니 / 청산이 조롱하고 녹수가 비웃는구나
당시 일제 강점기에 누가 지신의 목숨과 일가족의 고통을 담보로 이런 비장한 결심을 하겠는가?
그렇지만 국가는 그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였는지 국가 최고 훈장을 서훈하지 않았다.
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송정 호수공원은 그의 애국충정을 말 하려는 듯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발 걸음을 재촉한다.
시대가 변했는지, 애국심이 식었는지 나라를 구하려다 목숨을 희생한 고귀한 분들을 예우하는 마음은 자꾸만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연꽃이 피면 꽃과 동시에 꽃 속에 열매를 품고 개화한다. 꽃과 열매가 같이 맺듯 우리의 삶도 선과 악이 고스란히 제 속에 자라 운명을 만들어 간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연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상진 의사의 고귀한 나라 사랑은 시대를 떠나 영원히 기리고 받들어야 후대들이 더욱 자긍심을 가지고 나라사랑의 마음은 늘 푸른 호수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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