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1.09.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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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느닷없이 가을장마가 계절을 비틀어 발목을 잡더니 폭염의 기세를 꺾어 놓았다.
무더위를 피해 다니던 자세로 흩뿌려대는 비를 피해 다니다 보면 바짓가랑이보다 마음이 먼저 젖는 어느덧 9월이다.
감꽃일 때부터 병충해를 입은 건지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탓인지 주먹만 한 감이 설익은 채 투신이라도 하듯 땅에 머리를 박고 누워 있다.
어쩌면 나무는 가지마다 제 무게만큼 재촉하는 감들이 미웠을지 모른다,

요즘 자주 흩뿌리는 빗줄기만큼이나 사람의 목숨이 보잘것없이 뿌려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도 한다.
의붓아버지 성추행이 무섭고 두려워서 투신한 여학생, 세 자녀를 두고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한 택배회사 지점장의 절절한 유서뿐만이 아니다.
전자 발찌를 자르고 무고한 여성을 두 명이나 살해한 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행태도 지켜보아야 한다,

또한, 벌써 기억 저편으로 건너 가버린 버마 군부의 국가 장악과 무자비한 시민 학살이 과거 한때 우리의 역사를 보는 듯 이 순간에도 자행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군의 무책임한 아프가니스탄 철군 직후 텔레반의 전광석화 같은 함락으로 미국의 상향식 민주주의 도입은 실패로 끝나 버리고 생존을 위해 탈출하려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IS-K)의 카불공항 자폭테러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는 처참한 광경도 보았다.

미국과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지 20년 만에 아프간 전쟁은 미군이 철군함으로써 종전되는 모양새다. 2차 대전 이후 최장 기간이며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을 끈 전쟁의 흔적을 남겼다.

지금 세계는 유례없는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연일 죽음의 행렬이 가속화되어 가고 있으며 지진과 폭우, 산불 등 기후 위기로 인한 대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이 푸른 지구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생명 경시 현상이 가장 뚜렷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아 그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가난과 전쟁, 또한 내전의 피해자인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 고통을 어떻게 위로해 줄 것인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먹먹함이 엄습한다,
지금도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되고 그들의 꿈은 송두리째 빼앗긴 채 포도 알 같이 까만 눈동자만 깜빡이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무리 못나고 모자란 사람이라도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엄하다고 했다.
‘금 간 꽃병이 소리 없이 아파한다’는 시 구절에도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여린 배우 김혜자는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원래 아이들은 희망과 밝은 바깥세계를 꿈꾸며 태어나서 마음에 아무 두려움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과 친해진다고 한다.
세계가 국경이라는 편협한 벽에 의해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꾸며 성장해야 한다.
삶의 영양분이 듬뿍 들어 있는 소박하고도 끝없는 인간애가 아이들의 천국인 것이다.

가을장마에 후두둑 떨어져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흩어지는 여린 잎들을 보면 천사같이 고운 아이들이 세상의 평화로움보다 아픔을 더 많이, 더 먼저 겪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다 간 오드리 헵번의 말이다.

꽃으로도 때리기 아까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지구로 활짝 꽃 피우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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