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해 등불을 밝히면 내 앞도 밝아진다’
‘남을 위해 등불을 밝히면 내 앞도 밝아진다’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1.09.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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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어느새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을 지나 계절은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나는 가을로 성큼 다가섰다.

이 가을엔 키르키스탄 여인을 만나보고 싶다. 이스탄불이 내려 보이는 카페에서 까맣게 로스팅된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다.

태워버리지 못한 청춘의 미련이 남아서일까, 내 꿈은 저 어디쯤에서 식어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가을이 가기 전에란 수식어에 자꾸만 쫓긴 듯 쓴맛이 더 당긴다.

한편 쓴맛을 뱉어버리고 싶은 대선 출마 후보들의 네거티브는 푸른 가을 하늘마저 혼탁하게 뒤덮어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우려와 실망감이 코로나 변이보다 더 출렁이고 더 얼룩져 번져간다.

‘쌀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본다’ 는 옛 속담처럼 자신은 쌀을 훔쳐 먹고도 태연하게 겨를 훔쳐 먹은 개를 나무라듯 자신의 큰 약점을 감추고 남의 작은 흠을 크게 나무라는 것을 보며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국주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누구를 탓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국민이 염원하는 인물은 애초부터 태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한껏 기대했던 인물도 한 꺼풀만 벗기고 나면 악취 투성이다.

부부도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하지만 합이 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은 오랜 관습에도 미련이 남아 으르렁거리니 내 핏속에도 이들과 같은 DNA가 흐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언덕에 앉아서 해는 왜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지 궁금해하고 자연현상의 변화는 물론 인간 본연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고뇌하고 사색과 연구에 몰두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호기심을 동물이 지닌 본능적 호기심과 구별하여 지적 호기심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지적 능력을 상대방을 공격하는 네거티브전으로 일삼는 것은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서야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상대를 네거티브로 넘어뜨리고 나면 자신은 어떤 형태로 좌절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의 자화상은 애민정신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고 있어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두려움 없는 안정된 삶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명석한 두뇌로 네거티브전이나 일삼는 것보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그들이 지닌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올바른 자세이다.

금력과 권력에 집착하여 외눈박이 새처럼 어느 한 곳만 바라보며 투쟁 일변도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최종 목표인 대선 승리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이 나를 위해 어떻게 해 줄 것인가 보다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더 깊게 고민하고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올바른 대선 후보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남을 위해 등불을 밝히면 내 앞도 밝아진다’고 했다. 상대 후보를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장점을 칭찬해주는 것이 자신의 앞길을 밝히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는 저녁놀을 보며 어느덧 저 아래 이스탄불 카페가 궁금해진다.

어쩌면 저 속에 키르키스탄 여인이 오래전부터 같은 커피를 마시며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아라비안나이트는 오래전 이 뜨거운 사막을 지나갔음을 잠시 망각한 것일까?.

꽃무릇 흐드러지게 핀 언덕길에도 가을이란 명사가 낯선 듯 식어가는 계절이 두렵다.

아직은 미약한 풀벌레 소리가 9월의 달력을 한 장 넘기면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 것이다.

향이 깊고 풍미를 더하는 에스프레소처럼 대선 후보들도 결코 얕지 않고 언제나 사람 냄새 진한 그런 인물로 되살아나서 오랜 시간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의 마음을 훈훈하고 밝은 색채로 물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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