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김태운
하루 / 김태운
  • 이시향
  • 승인 2021.11.2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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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김태운]


여명이 새벽을 무너뜨린다
바람이 새어 나온다
동녘에서 이는 바람이 새큰새큰 불어온다
붉은 생각을 품은 채 하품을 하며 구름을 밀고 당기며 바람이 분다
산들산들 산과 들을 일깨우며 서녘으로 향한다
간혹, 빗줄기와 어울리며 나도 따라간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머뭇거릴 즈음이면 하늘도 붉으락푸르락
이윽고 고독한 황혼에 물든다
노을 속으로 파묻힌다
그것도 잠시
땅거미 우루루 몰려온다
검은 아가리가 기다렸다는 듯 날 통째로 삼켜버린다
어둠에 휩싸인 나는 늘 그렇듯 한동안 몸부림치다 
산 채로 죽음 속을 기어 들어간다
바람도 역시 고요 속을 흐른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았구나 싶을 때쯤이면 
관짝 같은 묵직한 눈꺼풀이 슬그머니 열리고
생과 사 사이에서 날 일깨우는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어느새 동녘으로 되돌아온 하루의 생이다
오늘처럼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면 머잖아 
저기 백록담을 오락가락하는 하얀 눈발이 날 덮치며 
눈무덤 속으로 날 유혹할 것이다
그럼에도 난 기꺼이 살아남아 
또 하루를 향할 것이다
지난 소설小雪의 그 하룻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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