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1.11.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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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겨울로 가는 길목은 오랜 습관에도 낯설게 다가온다.

억새도 머리를 풀고 황량해가는 산비탈로 접어들면 은빛 종아리가 드러나는 자작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마음까지도 맑아지는 기분이다.

벌써 중부지방은 첫눈이 지나갔다는 소식이 들리고 어물쩍 다가와 허무하게 물러가는 가을의 끝자락이 낙엽이 쌓이듯 가슴을 누른다. 그래서인지 가을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은행잎은 노란 카펫을 깔고 한 잎씩 팔랑팔랑 바람의 악보인 듯 춤을 추며 눈처럼 쌓인다.

그 길에서 내 눈을 반기는 손님을 만났다.

앙상한 가지 끝에 빨간 감 홍시가 겨울새의 배고픔을 알고 있는지 몸 한쪽이 푹 패여 그 의연함에 내 가슴이 뭉클하다.

다만, 탈색되어 가는 기억을 붙잡고 걷는 이 길에서 아무것도 놓지 못한 내 손이 가여워지는 것은 이 계절이 주는 허전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황금 들녘이 잿빛으로 드러누운 것처럼 연일 칙칙하고 소란한 대선 소식이 뉴스의 전신을 도배하고 있다. 이를 접하는 마음 한편이 즐겁지 않고 어두운 것은 왜일까.

대선을 향해 내 달리고 있는 두 후보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어찌 불안한 인물로만 비춰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최후의 승자만이 살아남는 오디션 프로처럼 대권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난관과 중상모략을 이겨내고서야 비로소 유일의 고지에 오를 수 있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안갯속을 서로 밀치고 넘어지며 불안하게 올라가고 있다. 마치 종아리를 걷고 칼바람 겨울을 맞이하려는 자작나무 형상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유색인종인 44대 대통령 오바마가 대선 예비후보로 연설을 할 때 그는 늘 소박함과 친밀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연설 중에는 대선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보통의 미국인이 인생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하는 방식대로 첫째, 골방에 올라가 기원하면서 내가 선거에 나가도 되겠는지 신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둘째, 골방에서 내려와 아내에게 허락을 받는 절차를 거쳤다라는 위트있는 말로 유세장을 웃음 짓게 했다.

사람은 대담하고 창조적인 선택을 할 때 취하는 각자의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가장 믿음직스럽고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으로 신께 기원하는 것과 멘토나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과 의논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간절히 기원한다는 것은 내면의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다짐이고 해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은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선수들도 중요한 경기에 앞서 자기만의 루틴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자기 양심과 대화할 때 평소에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 떠오르고 숨겨져 있던 내면의 강인함이 샘 솟기도 한다.

이번 대선에 도전하는 후보들도 본인의 결점을 감추려고 국민의 눈을 속이거나 거창한 말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보다 소박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국민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내어 희망을 주겠다는 솔선수범과 믿음직한 모습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내면에서 우러나는 마음의 온도를 꾹꾹 눌러 담아 약자에 대한 구원이 되고 그들의 영혼을 보듬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사람이길 바란다.

한때 붉게 타올랐던 열정을 뒤로하고 멀어져가는 가을은 무채색의 겨울에 묻혀가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대선 판국이 기득권의 싸움으로 세상은 마치 전쟁터로 돌변한 것 같다.

이들이 차마 담아내기도 힘든 말들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면서 공생과 상생의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허황된 일이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기득권의 이기심은 이미 감각을 잃어 국민의 체감온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비되었다.

비로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시작된 위드 코로나로 국민은 그동안의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쩌면 이 어려움도 삶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하고, 기계화되어 가려는 차가운 내면과 비양심, 증오로 가득 찬 마음과 자연을 훼손해도 된다는 만용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지 끝에서 참회하듯 시주하며 매달린 홍시도, 찬바람에 종아리를 걷고 서 있는 자작나무도 스스로 반성하는 듯 누구에게 나눠 주려는 듯 비장하게 내 가슴을 친다.

지금은 냉철하게 주위를 살피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치유와 희망으로 축약되는 언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이다

희망은 긴 어둠 끝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될 때쯤 흰 눈처럼 맑고 밝은 희망이 비춰 주기를 간절하게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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