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동거'
'불편한 동거'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06.2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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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은 편집국장
정두은 편집국장

20여년 전 배우 최민수씨가 출연한 드라마 ‘모래시계’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거다. 1995년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하며 ‘귀가시계’라고 불렸을 정도로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다. “나 지금 떨고 있니?”는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명대사다. 17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고,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패러디되곤 한다.

굳이 오래 전 방영됐던 드라마 대사를 끄집어 낸 것은 요즘 공공기관 분위기가 딱 그렇다. 폭풍전야다. 숨을 죽이고 새 울산 지방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역대 지방정부가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논공행상 원칙에 따라 낙하산 인사를 단행한 터이다. 기관장을 비롯해 감사, 임원 등 숱한 자리에 낙하산들이 투입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김두겸 울산시장 당선인의 새 지방정부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벌써부터 ‘누구 누구’는 1차 물갈이 대상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오는 30일 퇴임하는 송철호 울산시장이 임명한 시 산하 공공기관장은 13명이다. 울산도시공사·울산시설공단 등 지방공기업 2곳과 울산연구원, 울산일자리재단 등 출자·출연기관 11곳이다. 여기에 본청과 외청의 울산경제자유구역청장, 감사관, 울산박물관장, 울산문화예술회관장 등 개방형 직위 11개 자리의 장(1·3·4급)도 송 시장과 코드를 맞춘 이들이다.

공석인 울산연구원장을 제외한 기관장 12명은 적게는 올 연말에서 길게는 2년5개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다. 울산경제진흥원,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울산정보산업진흥원 원장은 임기가 1년4개월 가량이 남았고 울산시설공단 이사장, 울산도시공사 사장은 2024년 11월까지 임기를 남겨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새로 취임하는 시장이 전임 시장이 임명한 기관장들과 한동안 손발을 맞춰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불편한 동거’가 예상되자 일부 기관장은 스스로 자리를 비우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사정은 개방형 직위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남은 임기에 관계없이 사의를 표명하는 경우도 나오는 상황이다. 홍보실장과 울산시립미술관장은 송 시장과 함께 이달 30일 퇴임한다.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과 개방형 직위 공직자들이 국민의힘 새 시장과 시정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는 게 이유다.

새 시장이 임기가 남은 산하 기관장과 개방형 직위 공직자에 대해 무조건 사퇴를 강요할 수는 없다. 무리하게 사표를 강요할 경우 직권남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은 정부에서 발생한 사직 강요 등의 혐의에 대해 잇따라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지방권력 교체로 전임 시장이 임명한 ‘코드 인사’는 공직자뿐 아니라 지역민도 관심이 높은 사안이다. 그 가운데서도 임기가 남아있는 이들의 진퇴 여부는 지방정부 교체기마다 공직사회에서 늘 논란거리였다. 임기는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과 새 시장의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해 행정 철학이 다른 이들은 물러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전임 시장이 임명했어도 경영 성과 등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것으로 검증됐다면 임기를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자질과 능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보은인사나 정실인사로 자리를 꿰찼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낙하산 대신에 '전문가들'을 배치한다면 지역경제와 사회는 한단계 크게 업그레이드될 게 분명하다.

그런점에서 27, 28일 이틀간 공기업과 출연기관, 출자기관 등 시 산하 공공기관 13곳을 대상으로 열리는 시장직 인수위의 업무보고에 관심이 커진다. 정·관가는 공공기관장들이 그간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또는 인적쇄신 차원에서 교체될 것인지 숨죽여 지켜보는 분위기다.

인사는 무리하면 탈이 나기 쉽다. 흔히 인사를 ‘만사’라고 한다. 능력이나 도덕성이 중요하지만 임면 절차도 투명하고 적법해야 한다. 제 밥그릇 챙기겠다며 전임자를 막무가내로 몰아내고 자기네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면 그 인사는 ‘망사’가 된다. 지방 정권이 바뀔때마다 산하 기관장 인선을 둘러싼 낙하산 인사 논란이 그만큼 잦았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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