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비가 내리면
7월에 비가 내리면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07.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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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창밖에서 갈팡질팡 내리는 비, 어느새 7월의 막바지다. 염천을 달래는 저 부지런한 손사래가 속절없이 창을 때린다. 이 비는 분명 삼복의 더위를 식혀주고 목마른 초목에 생명수가 될 것이다.

어떠한 풀과 나무에도 똑같이 비가 내리고 그 속에서 저마다 더없이 소중한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는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가 생각난다. 

사람도 제각각 개성이 있고 생각이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모든 나무와 풀에 골고루 흩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나는 이처럼 차별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차별 없이 비가 내린다면 창 안의 나는 분명 차별을 받는 셈이다.

아마도 나를 적시기 위해 파란 바탕의 허공에 온통 진회색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무겁다.

내 경추를 관통하는 열대성 저기압은 어디로 빠져나가려는 것일까? 불타의 자비라면 하마처럼 무거운 내 어깨는 분명 누구의 시샘임에 틀림이 없다.

뜨거운 커피가 빗방울에 식지 않았다면, 은하계 강둑이 넘치지 않았더라면 잠 설치던 날들의 또렷한 천둥이며 뜨거운 섬광을 속죄처럼 풀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식어가는 커피잔에 비를 담는다.

창공을 적시는 문장들은 한여름을 쟁쟁 갈고 있는 말매미의 울음소리를 비틀며 흘러내린다. 낙엽보다 쉬이 낙담하는 빗방울은 동공에 뒹굴다 풀풀 사라진다. 하마처럼 무거운 중역은 하늘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겠다.

요즘 열대성 저기압보다 무거운 소식들이 뉴스를 무섭게 도배하고 있다. 버거운 중력보다 더 무거운 힘의 무게를 남용하는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굴레에 속박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자는 언뜻 위대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자미 눈처럼 시각이 치우치고 편협하여 국민의 눈을 자기 쪽으로만 바라보도록 온갖 장막을 가리려고 한다. 그렇지만 국민은 절대 눈 멀지 않다. 눈앞의 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기에 급급해 시간이 흐르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

나라 살림은 이미 기울어진 배처럼 좌초의 위기에 있지만 지금도 서로 자리싸움에 여념이 없다. 권력자가 안일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민심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민중이 외치지 않으면 끝까지 민생을 외면하고 자기들만의 환상에 빠져 버린다. 물론 그렇지 않은 권력자들도 가끔 있지만, 그들은 반대쪽 의견에 귀를 닫는 습관이 있다. 진흙탕 속에서 옳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이 침몰당하고 악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이며 악을 지지하는 것과 같다.

‘이동권이 곧 생존권이다’라며 지하철 시위를 해야만 하는 전장연의 외침, 0.3평 철창에 몸을 구겨 넣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비정규직의 삶 자체를 외치는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회장의 절규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차별 없는 사회를 우리는 원한다. 진실의 실종과 양심의 파괴, 사회적 약자의 외침을 외면하는 것은 삶을 치열한 전투로 전락시키고 희망을 걸어 볼 수 없는 내일의 슬픔으로 만든다. 

랠프 월도 에머슨은 ‘성공이란 무엇인가’란 글에서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는 그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빗방울의 개수보다 많은 질문과 상념이 식은 커피잔에 남겨져 있다. 과연 이 질문의 답은 누가 듣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혜는 시대와 지위와 상관없이 강력한 빛을 발하며 삶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의 능력과 개성을 마음껏 발휘한다면 삼초이목의 비유처럼 공정하고 정의로운 가치가 빛을 발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 조급함이 입안에서 알싸하게 군다. 부푼다는 것은 기다림의 끝에 있고 설렌다는 것은 온도의 끝에 있다. 덧없는 온도의 끝에 서성이다 어느 길목으로 사위어갈지 모를 여름이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희망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소한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는 일을 시작해보는 것은 7월의 막바지 생명수처럼 위대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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