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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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08.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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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삼복지간 (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을 유독 실감했던 여름이 처서를 지나며 힘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 같다. 열대성 저기압으로 무장한 삼복을 제압하려고 처서는 어김없이 제때 찾아와 추상같은 옐로우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하여 화려한 가을의 외출복을 착착 준비하는 분주한 손놀림이 시작됐다. 계절은 이토록 질서 있게 자리를 내어주고 또 주도면밀하게 자연의 변화를 이끌며 기나긴 여정을 되풀이 한다. 

8월에는 무더위와 함께 맞이하는 한민족의 소원이었던 8.15 광복의 뜨거운 목청과 춤사위를 그려본다. 코로나로 마스크는 잊지 않고 챙기면서 정작 목숨보다 귀한 나라를 찾은 이 날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태극기를 달지 않은 가정이 늘어나는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흐릿한 기억만큼 해무 자욱한 8월의 동해바다는 군청색 바탕에 흰색 수채화 물감이 온통 번지고 있다. 해무의 부드러운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는 바다는 모래말로 철썩대며 다시 안긴다. 파도는 바람의 힘을 빌려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해안의 문턱은 높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두들겨대는 노력이 가상하다. 어쩌면 더 높이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 본능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해안은 부서지는 바다의 고달픔과 숱한 사연을 받아주는 넓은 마음을 가졌기에 자신의 아픔보다 파도가 뱉는 모래 말에 더 애착을 갖는지 아기에게 젖을 맡긴 엄마처럼 가만히 가슴을 내어주고 말없이 누워 있다.

‘바다는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듯 바다는 오늘도 돌고래를 키우고 배를 띄우며 제 몸에 소금을 쳐 스스로 정화하고 바람의 요구에 몸을 찢기고 있다.

이처럼 제 한 몸이 나라를 구한다면 나라를 구하는 한 줌의 소금이 되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애국선열이 광복절을 지나며 더욱 고맙게 여겨진다.

가만히 부서지는 파도를 보노라면 온갖 상념에 든다. 지금 세상은 저 해무 속 물체보다 혼돈이다. 시대는 변하고 값진 노력의 대가나 철학보다 손에 잡히는 게임과 코인, 그리고 가상현실을 더 추구한다. 

강물과 바람, 계절까지 만물이 일순간도 머물지 않고 흐르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자연은 그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시각을 흐리게 할 뿐이다. 

오늘날 계파와 색깔론으로 점철된 현실에서 모두를 아우르는 인간미 넘치는 정치는 어려운 일일까? 쉼 없이 포효하는 바닷말을 모조리 들어주는 해안선처럼 귀를 열고 더 지혜로운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한 송이만 피어도 들판의 주인공이 되는 꽃이 아니라 여럿이 어우러져 하나처럼 아름다운 풀꽃처럼 함께 정을 나누는 사회, 나와 다른 주변을 살필 줄 아는 너그러움이 각박한 시대적 환경으로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황혼 무렵 지게에 볏단을 진 채,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가는 농부의 모습이 눈에 띄어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힘들게 갈게 아니라 소달구지에 전부 싣고 자신도 타고 가면 편할 것이라 생각해 농부에게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힘들게 가냐고 묻는 이에게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일한걸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라고 말한 한 농부의 일화가 마음을 울린다.

이런 모습이 우리 민족의 우직한 정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정이 새삼 그리워진다.

얼마 전 우리의 위성 누리호가 달을 맞이하고 탐색하러 떠났다. 시시각각 비춰지는 달과 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계수나무 잎이 언제 떨어지는지 궁금해진다. 

정치권이 아무리 시끄럽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한국인의 정과 과학기술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만하다.

나무는 잎은 많아도 뿌리는 하나이듯 뿌리는 땅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쉬지 않고 흙속의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여 줄기와, 가지, 잎으로 보낸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도 하나다.

모두의 노력과 지혜로 민주의 꽃을 피우고 부강의 열매를 달고 있다. 광복 후 이념과 배고픔으로 몸부림칠 때 6.25 남침으로 민족 간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지만 지금도 지구상 가장 위험한 휴전 상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남과 북의 경계는 더욱 명확해지고 서로의 이념은 달라졌지만 근면한 우리 국민의 비약적인 노력으로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만큼 한국인의 위상과 민주주의도 되찾았다.

어느덧 해무가 걷히고 푸른 바다가 알몸을 드러냈다. 해무 걷힌 후의 맑고 밝은 기운이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아직 여름의 끝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정직한 절기는 아침, 저녁의 공기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다가 올 가을은 여름 내내 지치고 수해로 힘들었던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계절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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