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보존 정부가 나서야
반구대 암각화 보존 정부가 나서야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10.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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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은 편집국장
정두은 편집국장

지난 2008년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허망하게 무너져내렸던 국보 숭례문을 기억하실거다. 아마도 문화재계에서는 다시 돌아보기 싫은 해로 기록됐을 것이다. 숭례문 복구에는 무려 5년 2개월이나 걸렸다. 복구에 투입된 총비용은 245억 원. 연인원 3만5000명이 동원됐다. 단청 작업에만 1541명이 투입됐다.

이 일로 문화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커졌고 문화재 보호 정책을 점검하는 기회가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숭례문 화재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일순간에 얼마나 어이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 온 국민이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그런데 현존하는 문화재 최고 가치로 평가를 받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가 '자맥질 국보'라는 오명을 쓴 채 하루하루 물에 씻겨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무려 57년 간 울산 식수원인 사연댐에 질식돼 애타게 광명을 갈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물에서 건져 올리겠다며 책임지고 나서는 기관도, 책임지라고 등떠미는 기관도 없다. 7000년 전 선사시대 조상들이 땀 흘려 그려준 암각화를 21세기 후손들이 보전도 못하고 빈사상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암각화가 새겨진 수직 암벽은 물을 잘 흡수하는 성질의 퇴적암이어서 선사시대 바위 그림은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됐다.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을 내버려둘 수 없다는 점에는 누구나 이견이 없다. 그런데 방법을 두고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20년 넘게 티격태격이다. 문화재청은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은 채 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를 물밖으로 건져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변 경관이 변형되면 202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어렵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의견이다. 하지만 시민에 대한 맑은 물 공급을 내세운 울산시는 대체 수원 개발 없이는 물을 뺄 수 없다며 발끈한다. 물길 돌리든, 수위 낮추든 하루 빨리 구해야 하는데 한세월 논쟁이다. 그동안 생태제방, 유로변경, 카이네틱댐(임시 물막이) 설치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고 모형실험도 가졌다. 그런데 번번이 거액의 예산만 날린 채 흐지부지됐다.

양 측의 대립이 격화되자 결국 국무조정실이 나서 중재하기에 이르렀다. 국무총리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고 어렵사리 올해 4월 국무조정실과 환경부, 경북도, 대구시, 구미시, 한국수자원공사 간에 대구 식수원인 청도 운문댐 물을 울산에 공급하는 ‘맑은 물 상생 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웬걸, 이 협정은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한 채 최근 대구와 구미 간 물 갈등으로 파기될 위기에 처했다. 대구가 지난 8월 '맑은 물 상생 협정'을 맺은 기관에 해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자자체들이 조금씩 양보해 맑은 물을 나눠먹기로 한 약속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지자체들이 알아서 먹을 물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암각화 보존 방안이 나오는 듯 싶더니, 볼썽사나운 지자체간 다툼에 휘말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섰다.

지난 11일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는 정부 부처들이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상헌(울산 북구) 의원이 공개한 ‘맑은 물 협정 해지로 인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대한 각 기관의 입장’을 들여다 보면 암각화를 건져내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울산과 구미는 암각화 보존에 정부가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대구는 구미의 귀책 사유를 언급할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경북은 도민 의견 반영을, 문화재청은 울산시와 소통해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세계 유산 등재에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수자원공사는 기관 간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될 사안이라며 한발 물러섰고, 국무조정실은 지난해 10월 사연댐 수문 설치 등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암각화 보존은 울산 물 문제가 전제되는 만큼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데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다”며 “특히 중재를 주도해야 할 국무조정실에서는 형식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를 생각해 볼 때 수려한 주변 자연경관을 그대로 두고 댐의 수위를 낮춰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주민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 식수원 확보도 그만큼 중요하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맑은 물 확보, 어느 것이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적 문화유산이고, 사연댐은 울산의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벽에 새겨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손상되고 있다. 울산시와 문화재청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울산 물 확보와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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