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글을 독창적으로 풀어내는 글그림 화가 거람 김반석
〈1〉 한글을 독창적으로 풀어내는 글그림 화가 거람 김반석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11.03 18: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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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한눈 팔지 않고 한글의 그림화 작업에 몰두

-최초로 한글을 예술로 승화
-현재 구상중인 한글 ‘존중’
-인생에는 4개의 기둥이 필요
-고희전(古稀展) ‘비움’ 계획
작업실에서 차를 마시면 글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거람 김반석 화가.
작업실에서 차를 마시며 글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거람 김반석 화가.

시월 어느 설레던 날, 보석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이 황금빛에 감긴다. 들녘에 펼쳐진 황금 이랑도 고개를 떨구는 시간이다. 추수는 경건하고 내 마음도 하나하나 떨쳐내는 법을 익혀간다. 발걸음이 닿은 곳은 산 빛 걸친 너와집이 그늘을 더 붉게 드리우고 있는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박제상로 기슭이다. 

발아래 내려 보이는 호수에는 가을이 깊숙이 발을 담그고 빗금으로 쏟아지는 은파를 떨쳐내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가을 새도 새털구름 따라 목청이 높아 농부의 꿈도 무르익어 간다. 아이에게 들려주던 호랑이 발톱도 문틈 사이로 스멀스멀 새어 들어오던 때도 이 즈음이다. 선 듯 들어선 호젓한 기슭엔 낭만의 화가가 살고 있어 이 가을이 더 풍성하다. 산속의 귀인은 홀로 깨닫고 넉넉히 지내는 법을 익혀간다.

■국내 최초로 한글을 그림으로 승화

거람 김반석은 한글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상징을 시각화한 글그림 화가로 유명하다. 17년 전 전국을 방황하며 다니던 시기에 지인의 도움으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자연을 벗 삼아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다. 창고를 리모델링 해 갤러리로 만들고 이 마을을 ‘문화촌’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은 이곳의 정취에 반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는 이곳의 터주 대감이 되었다 

“새는 하늘에서 쉬고, 파도는 바다에서 쉬고, 나무는 쉬기 위해 스스로 휘어진다. 사람은 그런 자연에서 휴식을 찾습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화촌으로 가는 길은 오롯이 자연과 소통하고 있었다. 

지난 1일 찾은 그의 작업실에는 그윽한 묵향과 직접 빚은 다기에 차를 우려내는 정갈함이 공존했다. 

30년 전 은행원으로 입사한 그는 명함을 받은 첫 날 ‘나는 언제 퇴사할 것’인가를 명함 뒷면에 적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입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 욕구는 순간순간 치밀어 올랐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침묵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IMF가 오고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찾아 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퇴직 후 전국을 돌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어느 날 주왕산의 제3 폭포를 오르던 중 지게를 진 노인을 만나 무턱대고 자신의 갈 길을 물었더니, 노인은 “젊은이가 가고 싶은 길을 가지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가고 싶은 길인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뒤를 이었다. 남들이 하는 그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당을 쓸다 문득 생각났던 것이 우리의 아름답고 훌륭한 한글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데,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분야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이 그림으로 승화해 지금까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프로 즉, 쟁이는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실력이 발휘되어야 하기에 결코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고집 또한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거람의 한글 사랑은 한글이 그림이고 그림이 한글이다. 화가들도 알아주지 않는 글그림에 천착하여 더욱 가난하고 겸손하다. 배고픈 성찰로 배를 불리고 비난의 화살로 몸이 비대해진  글그림 화가는 하늘과 땅과 인간을 그림 속에 담아 꿈틀거리게 한다.

■첫 작업 글그림 소재는 ‘꿈’

거람에게 제일 처음 그림의 소재가 된 한글은 ‘꿈’이었다. 

그는 “꿈이라는 글자로 많은 그림을 그렸고, 살아가면서 꿈을 잃지 않은 채 꿈을 꾸며 살아가기를 바랬다”며 ”글그림은 발상의 전환, 한글의 가치를 누구보다 숭고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염포초등학교 꿈 프로젝트인 꿈을 긷는 마중물, ‘꿈을 쏘다’에서 재능기부를 하며 어린이들에게 꿈을 재정립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그는 “‘사랑’이란 어머니의 뱃속으로부터 시작된다면 물을 찾는 아이에게 샘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아이가 먹고 자라는 것처럼 늘 가슴 뛰는 것이며, ‘행복’이란 글그림은 살면서 오는 어려움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의 웃음으로 나눌 수 있을 때 나온다”고 평소 지론을 펼쳤다. 

그러면서 “글그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랑과 행복은 함께 하고 서로 나눌 때 비로소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인생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4개 기둥이 지탱

칠순에 가까운 나이인 그는 지금 ‘존중’ 이라는 글자에 심취해 있다.

“존중은 나보다 어린 아이에게도 한 계단 낮은 곳에서 아이의 말을 받드는 것”이라는 그는 “어린 아이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질문을 하면 그 눈높이에 맞는 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겸손과 존중이 없는 사회는 삭막하고 그로 말미암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반고흐의 움직이는 그림을 늘 흠모해 왔다. 그래서 움직임, 움직이다가 아니라 움직인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그는 “인생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기둥 4개가 있어야 지탱한다”며 “기둥이 하나면 불안하고 비바람에 쉽게 넘어지지만 4개면 견고해 어떤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얘기한 4개의 기둥은 자기철학, 자기신앙, 자기예술, 자기양심이다. 또 “양심은 내가 타인에게 당해서 싫은 것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기 양심을 버리지 않고 다스리며 살아간다면 더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람은 오는 2025년 3월 29일 그동안 반석 갤러리를 방문해 방명록을 남긴 70인을 초대해  ‘고희전(古稀展) 비움’을 구상하고 있다. 비움은 채움의 반대말이 아니라 무르익고 더욱 완연해진다는 의미라고 했다. 비워서 더 넉넉한 거람의 삶이 한글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는 재미를 오랫동안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람은 아내를 생각하며 작사, 작곡한 ‘당신이 산이라면’을 기타 연주와 함께 불러 주었다. 가을이 송두리째 내 안에 들어왔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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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향 2022-11-08 11:57:56
거람 김반석 선생님의 삶을
이렇게 읽게 됩니다.
지난 토요일
남송우 이사장님과 찾아 뵐 것을 그랬습니다.

김반석 2022-11-04 15:48:37
고마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귀한 걸음
소중한 차담
오래 만끽 할 수 있겠습니다
잘 다듬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풍성한 가을입니다.
늘 건강한 나드리 되소서
고맙습니다
거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