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묵비권
바람의 묵비권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11.1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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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의 이태원 골목에서 채 꽃 피우지 못한
몽우리 '툭' 하얀 국화 한송이 함초롬히
향기 얹어 다시 꽃 피울 수 있길 기도
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누구를 맞이하려는지 산천은 울긋불긋 곱게 치장을 하고 하늘은 쪽빛 물감을 버무려 허공에 말리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는 외출이 어색할 만큼 익숙해져 있는 시월의 끝자락이 어찌 그렇게 아팠던가? 저 파란 허공이 무너져 내릴 줄, 저 붉은 산천이 비통의 눈물일 줄 몰랐다. 비극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바람에게 애써 물어볼 량이다. 그렇지만 바람은 입을 닫은 채 말문을 열려 하지 않는다,

10월의 마지막 즈음이면 언제나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 우리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계절이 되고 말았다. 지난 달 29일 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 다시 우리를 통곡하게 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꽃다운 나이의 학생들을 차가운 바다에서 잃어버렸던 일이 아직도 잊히지 않은 채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그 때 우리는 반성과 성찰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그토록 다짐을 하고 울분을 토해냈다. 그날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누구의 죄도 아닙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메모가 희생자들 곁에 놓여 그들을 위로했지만 나는 무거운 죄책감에 할 말을 잊었다.
답답한 마음을 떨치려고 친구들 틈새로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수많은 인파 속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황경막이 일그러졌다. 살려달라고 목청껏 외쳤지만 아무도 들리지 않는 골목일 줄 몰랐다.

하늘은 찔끔 눈을 감았고 골목길 바람은 모른 채 지나갔다. 울컥 입에서 내장 냄새가 나는 동안에 전능한 신도 구원의 손길을 거두어 버렸다.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국가는 그 시간만큼은 완전한 부재였고 다행히 그 곳에 없었던 우리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와 회한이 죄책감으로 남았다. 어른들이 만든 아비규환의 국토에 내 아이들이 갇혀 허우적거렸고 그것을 외면하고 뒷짐을 진 기득권들은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야만스런 어른들의 천사 같은 아이들이 숨을 멈추는 시간이었다. 채 꽃 피우지 못한 몽우리가 툭, 그렇게 질 줄 몰랐다. 가을의 상징 국화처럼 진한 향기를 퍼뜨리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를 바랐지만 하얀 국화꽃만 그들이 떠난 자리위에 함초롬히 향기를 얹었다. 우리는 통곡의 이태원 골목길에 갇혀 망연자실한 채 눈물만 삼키고 있다.

모두들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무한한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표면적인 성장에 급급했다. 겉으로는 IT 강대국, K-POP의 세계적인 인기, 원전기술력, 조선, 자동차 등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수준이나 내면의 성장은 표면적인 성장을 따라가기에 그 시차가 컸던 것 같다. 외신들도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송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좋다는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먼 타국에서 건너와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에게도 큰 빚을 진 셈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난 후 희생자들의 애도나 유가족들을 향한 위로보다 한 발짝 앞서 필연적으로 정치 셈법을 일삼는 이들이 있다. 정쟁으로 둘로 나뉘어 서로 공방만 주고받는 사이 국민은 유가족과 동고의 마음으로 숨죽여 운다. 

이 비통의 거리에서도 자신의 잘못은 축소하거나 은폐하고 숙성되지 않은 날것의 말로 더 큰 상처를 입힌다. 바람이 묵비권을 행사하듯 차라리 그들의 묵비권이 상처를 덜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섭게 밀려든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자신의 옷을 벗어 입혀주고 한 명이라도 더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안간힘 쓴 의인들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정작 맨 앞에서 구조를 하고 지휘 감독을 위해 선출한 사람들은 뒷전이고 일선에서 본분을 다한 사람들에게는 가혹하게 문책 하고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밤잠을 설치는지.

그날의 충격과 비난의 댓글로 절망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이 영웅이었다는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응원할 것이다. 안타까운 목숨은 10월의 끝자락에서 시들고 말았지만 향기로운 가을 국화처럼 또 다시 꽃 피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의 목소리에 즉각 반응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기도한다.

외출을 마치려는지 훌훌 옷을 벗는 11월이다. 바람은 휑하게 식어가고 웃음을 지운 내 얼굴이 자꾸만 미워지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이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것처럼 마음을 다독여 다시 활기를 되찾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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