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특허’로 인생역전 일군 울주 미래환경산업 이상열 사장
〈3〉‘특허’로 인생역전 일군 울주 미래환경산업 이상열 사장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2.11.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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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도전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빗물받이 덮개’ 개발

- 중국집배달부터 해외근로까지 
-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한 삶
- 가난 이겨내고 인생역전 성공
작업장에서 빗물받이 덮개를 생산하고 있는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미래환경산업 이상열 대표가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작업장에서 빗물받이 덮개를 생산하고 있는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미래환경산업 이상열 대표가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산은 소박하지만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난 28일 오후. 좁은 산기슭에 자리한 선홍빛 늦가을이 오늘 만나는 분과 흡사하다.

울산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에 터를 둔 ‘미래환경산업’은 울주군 시니어 기술창업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위풍당당 창업한 1호 사업가 이상열씨가 사장으로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해 특허를 받은 ‘빗물받이 덮개’ 제품은 관공서와 아파트, 학교 등 수요처가 다양하다.

이 사장은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4째로 태어나 일찍부터 독립을 했다.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국집 배달원부터 해외 근로까지 도둑질 빼고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경제적인 환경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눈가에는 옅은 이슬이 맺혔지만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15년 전 아파트 관리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여름 장마철이 되면 아파트 배수로에 낙엽이나 담배꽁초 등 이물질이 들어가 자주 막히고 역류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때마다 관리소장과 입주자 대표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기필코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라고 대책 없이 호언장담을 하고 만 그는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느껴 빗물받이(그레이팅) 덮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느새 연구에 몰두하게 됐다. 그리고 해내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이 일이 ‘미래환경산업’의 초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 빗물받이 덮개로 사용한 피트 커버는 90% 이상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도안한 것은 어골형으로 생선의 뼈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어골형은 이물질을 걸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의 실패를 거쳐 지금의 ‘갈바륨’ 재질의 빗물받이 덮개를 완성시켰다. 갈바륨은 단가는 비싸지만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 ‘시니어 기술창업센터‘를 만난 건 천운

아이디어는 있었으나 어떻게 사업과 연관지어 생산할 지에 대한 확신이 불투명했던 때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울주군 시니어 기술창업센터’를 만나는 행운이 찾아왔다. 센터는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중·장년의 인생 제2막 설계를 위해 창업 아이템이 확실한 사람들에게 실전창업교육은 물론 경영지원을 받아 공장을 설립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일까지 지원을 해주는 곳이다. 그는 센터의 도움으로 빗물받이 덮개를 특허까지 내는 행운도 따랐다.

“센터를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천운이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정말 고마운 곳이다”며 그때 일을 회상했다.

지금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자본과 기술력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울주군 시니어센터를 추천한다. 우리 지역의 좋은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성공사례를 공유하여 자신과 같은 성공사례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선배로서의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센터의 도움을 받아 공장을 설립한 그는 처음에는 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마진이 적어 직접 생산·판매까지 하게 되었다.
8년 전 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전시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제품 홍보가 되면서 광고나 마케팅 없이도 회사는 많은 거래처를 보유하고 있으며, 조달청 벤처나라, S2B 학교장터에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 신뢰·고객 만족 최우선 기업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고객의 만족도이고 남에게 10원의 손해를 입히면 내가 100원의 손해를 본다는 생각으로 소비자가 만족할 때까지 하자 보수를 해 주고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나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고철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제품의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이익이 다소 적더라도 고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적을수록 풍요롭고 많을수록 빈곤하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새기면서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도록 그를 채찍질 하는 듯하다. 

알루미늄 재질은 녹이 설지 않는 반면 자주 교체해야 하는 단점이 있고, 철은 무겁고 단가도 비싸 제품의 재질에 대해 고민하던 그에게 포항제철에 근무하는 지인이 갈바륨을 조언했다. 긍정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많은 이들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줄 때 가장 행복하고 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지금도 고객의 입장에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착안해 제품을 구상하고 있다. 여름 장마철이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 침수로 인명피해는 물론 물적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해 홍수 대비 차수막을 고안하고 제품 생산 준비 단계에 있다. 

“현재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며 경비 절감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춘다.

그는 힘든 일이 있으면 선배나 동료들과 함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지만 중지를 모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1인 기업이지만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제품을 생산하고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도우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 또한 그의 소박한 꿈이다.

난향에 심취해 집에서 재배하고 있는 300여 종의 동양난
난향에 심취해 집에서 재배하고 있는 300여 종의 동양난

■ 난향(蘭香)에 심취해 동양난 300여종 재배

그는 어렸을 때 독립했기 때문에 형제들과의 우애가 더욱 돈독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웅촌에 모여 살았다. 

“몇 년 전부터 우리 형제들은 모두 동양난(蘭)에 심취해 있다. 그래서 동양난의 메카인 합천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 넓은 대지를 구입해 난을 키우고 전시회도 하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그는 “막내라 심부름을 도맡아 할 것 같아 아직 합류하지 않는다”고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시간 날 때마다 아내와 등산을 다니며 동물이나 비 피해로 뽑히고 상처가 생긴 난(蘭)이 있으면 다시 땅에 묻어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인다”는 그는 동양난 애호가로서의 역할도 틈틈이 하고 있다.

그는 웅촌 시골 마을에 꿈에도 그리던 한옥을 마련했다. 오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물 한 컵이라도 나눌 수 있도록 낮은 담장을 택한 그는 동양난 300여 종을 가꾸고 있다.  어느새 그런 취미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지금의 행복은 내가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고, 참고 기다려준 아내 덕분이라고 했다. 

“15년 전 고생 끝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지주막하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열심히 살았지만 불행이 겹쳐 절망하기도 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지금까지 건강하게 등산을 즐기고 봉사활동과 여가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선지 그는 아내와 함께 하는 봉사활동이 그에게 주어진 삶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공장 한 켠에는 각종 채소를 재배하고 토종닭을 기르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기고 있다.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서 1인 다역을 하는 그는 “앞으로도 욕심 부리지 않고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겠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난의 향기와 고귀함을 찬미하며 등산을 하고 내 손길이 필요한 곳에 봉사하며 사는 것이 소박한 꿈”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감 몇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 두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시골의 가을 정취를 꼭 닮은 듯하다.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한 그의 삶이 한층 더 풍요롭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특허’와 ‘신제품 개발’에 왕성한 발걸음이 이어지길 바란다. 추억은 항상 뒤에 머물러 우리는 틈만 나면 걸어온 길을 반추하지만 미래를 향한 그의 걸음은 늘 행복한 꽃길이길 기도한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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