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향이 흐르는 문화 공간 ‘명지갤러리’ 김광련 관장
〈7〉시향이 흐르는 문화 공간 ‘명지갤러리’ 김광련 관장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3.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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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힘든 숙제 끝내고 시인과 함께 하는 음악세상으로

-36년 동안 시집살이 하며 등단
-숨쉴 공간으로 명지갤러리 개관
-마음은 시인으로 뿌리는 작사가
-꽃 같은 삶 인생2막에 담아내길
'마음은 시인으로, 뿌리는 작사가'로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명지갤러리 김광련 관장이 활짝웃고 있다.
'마음은 시인으로, 뿌리는 작사가'로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명지갤러리 김광련 관장이 활짝웃고 있다.

시처럼 노래처럼 한 생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여인이 있다. 시어머니를 친정엄마 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연모한 여인이 있다. 지난 해 시어머니를 여의고 한참을 우울증에 시달리며 슬퍼했던 한 여인과의 조우는 낯설지 않았다.

정열의 빨간색 외투를 입은 김광련(60) 관장을 지난 달 17일 그의 갤러리에 만났다. 김 관장은 첫 인상에서 이미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분출했다.

“나는 여자인 것이 정말 좋아요. 이렇게 화려한 색으로 단장하고 예쁘게 꾸미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라고 말하는 그의 강열한 카리스마 뒤에는 역시 시인이고 소녀다운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는 갤러리 관장이고 시인이기 전에 36년 동안 시부모님을 봉양하며 살아왔다. 시어머니가 구순이 다 되도록 하루 세 끼의 식사를 따뜻하게 챙겨드리는 효부였다. 문학동인 모임이나 지인 모임에는 언제나 지각생이다. 시부모님 식사를 챙겨드린 후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인 나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을 즐겼다. 그것이 큰 자랑거리였고 자식들을 모두 품에 두고 싶은 욕심이 아주 컸던 분이다”라고 어머니를 회상했다.

“고된 시집살이 중에 울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다니며 인문학 공부를 했다. 매일이 지뢰밭 같았던 시집살이에서 비상구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며 그 비상구의 통로에서 시를 만나고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막 시작된 3년 전 개관한 ‘명지 갤러리’의 탄생은 숨 쉴 공간이 절실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마침 살고 있던 건물의 1층 사무실이 비어 있었고 그 공간을 사무실 겸 작업실로 사용하고 싶어 시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였고 그것이 꿈같이 이뤄졌다"고 한다.

“너무 기쁜 나머지 지인 한 분과 함께 다른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갤러리를 꾸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가는 공간이다”며 “갤러리의 개관은 그동안의 설움이 모두 상쇄될 정도로 나에게는 큰 선물이고 기쁨이다”는 말에 갤러리를 아끼고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첫 전시회는 70편 정도의 나의 개인 시화전이었다, 나는 인덕이 많은 사람이라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을 열거했다.
그 후 전시 요청이 쇄도했고 방송사 ‘문화 공감’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 되었다고 전한다.

“작가들이 출판기념회를 할 때 음식점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음식냄새 풍기는 곳에서 하는 것이 늘 아쉬웠다” 며 명지 갤러리에서 품격 있는 출판기념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명지 갤러리는 문턱 낮은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문화 오작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그는 묵은 생각을 밝혔다.

“물론 사비는 많이 들지만 즐거움과 해방감이 더 크기에 기쁜 마음으로 명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김관장이다.

“시어머니는 정도 많았지만 강한 분이셨기에  인내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적도 많았다. 켜켜이 쌓여있던 울분이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즈음이면 이불속에서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신세 한탄도 했다”고 조심스럽게 진심을 밝혔다. “그때 나에게 두 가지 소원이 있었다. 하나는 시댁에서 분가해 남편과 둘이 살아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들을 낳는 것이었다. 결국 시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 분가는 못했지만 아들은 낳았다. 아마도 그 소원이 더 절실했었던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2021년 시어머님이 88세로 세상을 떠나시고 무척 외로움이 컸던 시아버지가 1년 후에 같은 곳으로 가셨다.” 

명지갤러리에서 전시된 향토작가 초대 시화전.
명지갤러리에서 전시된 향토작가 초대 시화전.

슬픔에 무게를 더하기라도 하는 듯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몇 주 후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시어머님에 대한 애증이 깊은 탓이었을 것이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힘들었던 긴 여정이 마침내 끝이 나고 한결 가볍고 편안해 질 거라 생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6개월 정도는 나의 어느 한 부분을 잃은 것 같은 허전함과 우울감에 많이 힘들었다”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아픔으로 마른 한 숨만 들이 킨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움 섞인 그의 한숨이 바람에 실려 그 강 너머로 전해져 어떤 화답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최선을 다해 어려운 숙제를 마친 아쉬움과 안도감이 밀려드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36년의 시집살이는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끝까지 살아낸 내가 대견하고 어려운 숙제를 홀가분하게 마친 느낌이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힘든 시절에 태어나 더 살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어머니의 삶을 다독거렸다.

“친정어머니께 가면 어머니 얼굴에 꽃이 피고 버선발로 달려 나오신다”며 “그런 엄마를 두고 하룻밤도 같이 자지 못하고 식사 시간이 되면 시댁으로 돌아가 밥을 차려야 했다”고 말하는 그는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밖에 나가면 수시로 시계를 봐야 한다. 식사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것이 정말 싫었는데 지금은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 며 오늘도 자유롭다고 웃음 지었다.

“상대적으로 친정엄마께 많이 소홀한 것 같아 가슴 한켠에 죄스러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 그는 “엄마는 내게 큰 위안이 되고 용기를 주신 분이다. 늘 나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너 같은 며느리가 있어 시어머니는 행복한 사람이다. 네가 내 딸이어서 고맙다. 너는 잘 할 수 있어라는 엄마의 말씀이 지금까지 견디며 살아내게 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참 현명한 분이셨다”고 친정엄마의 딸이었던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측은지심을 앞세우기보다 당당한 여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것이 김관장의 깊은 속내다.

김관장은 시인으로 등단하여 몇 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를 쓰면서도 어느 한 부분에 대한 갈증이 늘 그를 공허하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등, 하교 길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닐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던 그다. 시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그 갈증을 지금 노래 시로 채워가고 있다.

“처음에 쓴 노래 시는 ‘당신은’ 이란 제목이다”며 유명한 작곡가를 만나 자신이 직접 쓴 가사에 이름 있는 가수가 음반을 취입하여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김관장은 약 200편 정도 작사를 했고 고향에 대한 노래를 갈망하면서 "태화강 국가정원" 이라는 곡을 발표해 울산 지역가수들이 팀을 모으고 '오미녀'가 불러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마음은 시인으로 출발했으나 뿌리는 작사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작사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고 한다.

“작년에는 ‘꽃은 봄을 사랑했지’ 라는 시화집과 음반을 내면서 갤러리에서 조촐한 음반 발표회를 가졌다"고 말하는 그는 벅찬 행복을 숨기지 못했다. 신춘에는 개인전과 출판기념회, 공로상 등 다양한 계획을 하고 있다. “상을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행복하다”는 그의 선한 영향력이 명지 갤러리를 한껏 빛낼 수 있기를 바란다.

김관장과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그래도 끝까지 잘 살아냈다’라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성취가 함축된 말로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끝까지 잘 해낸 그가 이제 오롯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지난한 세월, 긍정과 희망의 채찍질로 열심히 걸어왔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삶의 무게가 바닥을 다졌을 것이고 또 그 길 위에서 수없이 울고 웃었을 것이다.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인생길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의 화려한 명함 뒷면에는 본인의 시 ‘미인’이 적혀 있다. ‘꽃은 잠을 잔다. 그래야 더 이뽀지니깐, 나도 잠을 잔다. 그래야 꽃이 되니깐’

조금 늦긴 했으나 지금이 오히려 신혼 같다는 김 관장이 좋은 노래 시를 많이 들려주길 바라며 누구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바라본다.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 차디찬 겨울 추위를 견디고 그 속에서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전령사들의 향기가 코끝을 감도는 듯하다. 김 관장도 꽃물이 들어 향기를 잃지 않는 여인으로 인생 제 2막을 살아가길 바라며 신춘에는 마침내 그의 꿈도 활짝 피어나길 응원한다.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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