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아이들처럼
새 학기 아이들처럼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3.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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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선물
재앙으로 변해 고통도 안겨주지만
신춘엔 위로와 희망 메시지 전달
새학기 아이들처럼 힘차게 행진해야
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가지 끝 삭막한 바람을 뿌리친 흔적 때문인지 옅은 연둣빛이 눈물겹다. 마른 감정을 억누르며 꼭 쥐었던 노란 희망 한 자락 펼쳐 보이는 3월이다. 새 학기 불그스레한 얼굴로 새 가방을 메고 새 친구, 새 교실과 맞닥뜨린 꼬맹이들이 왁자지껄 거리며 대견스러운 모습도 이 때 쯤 이다. 연둣빛 설렘은 이렇듯 꽃샘추위처럼 더디게 다가온다. 

냉혹한 추위에 눈물 몇 방울 쯤 흘렸음직한 봄꽃들이 가지 끝에서, 땅 속에서 피어나려고 쿵쿵 심장을 가다듬고 동공을 굴리고 있으리라. 언 땅을 헤집고 피어난 복수초,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피어난 변산 바람꽃을 앞세워 천지에 각양각색의 꽃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하나, 둘 이름표를 달고 나와 우리의 심장을 마구 흔들어댈 것이다.

자연은 이처럼 아름답고 경이로운 선물도 하지만 참혹한 재앙을 서슴없이 던져주고 어떻게 극복하라는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자연의 균형, 그 틈으로 산산이 조각나 버린 튀르키예가 있다. 어린아이의 푸른 꿈도, 조밀한 언어들로 나누던 가족의 행복도 한 순간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튀르키예, 시리아는 지진으로 인해 5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많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 처참한 현장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이 고통스럽고 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언제 어디에서 이와 같은 참혹한 재앙이 재연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온기를 잃은 아이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아버지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붕괴된 건물에 깔린 상태에서 만삭인 엄마는 사력을 다해 아이를 낳고 숨졌다. 아이를 발견했을 때 엄마와 아이는 탯줄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한 생명이 태어난 곳에서 그를 닮은 아이를 낳은 엄마는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세상과 이별했다. 병원으로 옮겨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이의 이름을 ‘기적’ 이라고 불렀다. 그 아이를 입양하려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결국 고모에게 입양되었고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거룩한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죽음과 삶이 엉켜버린 이 거대한 재앙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못다 핀 엄마의 삶까지 기적처럼 환한 생명으로 꽃피우길 바란다.

한편, 튀르키예에 사는 9세 소년 후세인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재한유엔 기념공원 측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에는 ‘저는 9살이고 터키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터키 지진 이후에도 여러분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도왔습니다. 나는 어떻게 쓰는지 모릅니다.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며 ‘자라서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국에 방문하겠다. 나중에 우리나라에 휴가를 오면 우리 집에 손님으로 대접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메시지에는 한국 긴급구호대 활동사진과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명민호 일러스터의 그림도 담겨 있었다. 그림에는 6.25사변 당시 한국인 소녀에게 수통을 건네는 튀르키예 군인의 모습과 이번 지진피해로 망연자실한 튀르키예 소녀에게 한국 긴급구호대가 건넨 물을 마시는 모습이 같은 구도로 그려져 있다.

지금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공포에 휩싸인 나라도 있지만, 위기에 처했을 때 서로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감사하다. 여러 나라에서 내민 따뜻한 손길은 튀르키예의 어린 소년에게 선한 영향력이 되었고 앞으로 그는 큰 뜻을 키우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큰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픔이 있는 그 곳에도 봄꽃은 피어나고 새들은 태연하게 노래 할 것이다. 자연을 파괴한 지구인에 대한 경고는 단호하고 명징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각의 퍼즐이 맞춰지듯 상처도 치유 되겠지만 언제 어디에서 자연의 서슬 퍼런 보복이 닥칠지 겸손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 거대한 재앙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이 일을 겪으며 우리는 작고 소박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그런 사소한 행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졌다.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삶은 더욱 간결하고 행복해진다. 

이 순간 우리가 새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찬란하고 감사한 일인지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참혹한 재앙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것은 자연이 만든 재앙 속에서 자연이 주는 섭리와 일맥상통하는 일인 것 같다.

저마다의 나무와 꽃들이 생의 환희를 유감없이 드러낼 시간이 다가왔다. 귀천 없이 품고 길러낸 신춘은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큰 선물이다. 우리도 새 학기를 맞이한 아이들처럼 새롭게 가다듬고 겸손하고 기쁜 마음으로 행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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