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익 추가 적용 첫 사례
낮은 경제성 병상 축소 우려도
보건 위기 대처 등 필요성 절감해
지역 정치권, 시민단체 등 중심돼
숙원 사업 통과 촉구 여론도 확산
[울산시민신문] 울산시가 지방의료원을 짓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타당성 재조사’ 결과가 내달 중으로 나온다. 시는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 2021년 12월 지방의료원 신축을 위한 타당성 재조사를 기획재정부에 신청해 이듬해 2월부터 조사가 진행 중이다.
1년 넘게 넘게 이어지는 타당성 재조사에서 ‘경제성’이 여전히 발목을 잡으면서, 자칫 병상 규모가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공공병원 확충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평가기준에 첫 반영돼 어떤 조사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타당성조사에 공적 역할 첫 반영
울산의료원 건립에 필요한 총사업비는 2880억 원에 이른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이 300억 원 이상인 사업은 기재부가 주관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혹은 타당성 재조사를 받아야 한다.
코로나 유행을 계기로 지난 정부에서 공공병원 확충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길이 열리긴 했으나, 울산의료원은 설계용역에 이미 국비 10억 원이 투입돼 국가재정법에 따른 타당성 재조사 대상이다.
지방의료원 확충은 경제성 판단 기준인 ‘비용편익비(사업으로 거둘 미래 편익과 투입 비용을 나눈 비율) 1’을 넘기 어렵다. 대체로 사업에 쓴 비용에 견줘 경제적 이익이 더 커야 타당성이 인정되는데, 공공성 강화에 방점을 둔 공공병원 확충이 좋은 평가를 받긴 사실상 어려운 기준이다.
이에 기재부는 지난해 말 ‘예타 수행 총괄지침’을 개정해 공공병원 사업 타당성을 따질 때 △감염병 관리 △초기 집중 재활치료를 통한 재원 일수 감소 △지역사회 보건사업 추진 효과 등도 ‘편익’으로 산출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보건 관계자들은 이번 타당성 재조사가 감염병 관리와 보건사업 추진 효과 등 사회적 편익 항목이 추가 적용된 첫 사례인 만큼 공공의료원 설립의 툭수성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공의료 민낯 보여준 울산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2020년 12월, 울산 보건당국의 최대 난제는 병상 확보였다. 광역시 중 지방의료원이 없는 울산으로서는 어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지방의료원은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병원이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재난 상황 등 보건의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전선에서 활약하지만, 17개 광역지자체 중 울산을 포함해 광주, 세종, 대전(2026년 준공 예정) 4곳에만 없다.
기재부 타당성 재조사 결과를 1년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는 울산은 코로나가 심각했을 때 병실 부족 등 의료체계 공백 사태를 겪으면서 지방의료원 필요성을 여실히 절감했던 도시다. 울산대병원과 동강병원 등 지역 종합병원을 총동원했지만 병상 부족난에 시달렸고, 이들 병원은 일반의료마저 차질을 빚었다.
특히 2020년 12월 남구 양지요양병원에서 발생한 200명이 넘는 집단연쇄감염 사태는 울산 공공의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역에서 유일한 코로나 전담병원인 울산대병원은 병상 부족으로 감염병 대응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요양병원 확진자들은 코호트 격리된 병원 건물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불안 속에 지냈고, 이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고령 사망자는 속출했다.
■경제성으로 판단해선 안 돼
울산시가 북구 창평동에 공공의료원 설립을 추진하게 된 이유이다. 게다가 지역사회 열망도 컸다. 울산의료원 설립 서명에는 시민 22만 명이 동참했다. 시는 오는 2027년까지 북구 창평동 1232-12 일대 4만 ㎡ 부지에 500병상 22개 진료과목에 의료인력 900여 명이 종사하는 울산의료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울산의료원 건립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울산의료원 설립과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2월부터 사업 타당성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의료원의 '비용 대비 편익' 값은 기재부의 지침이 개정되기 전에 실시한 타당당 재조사 중간 점검에서 통과 기준인 1을 넘기지 못했다. 그동안 시는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자료를 보강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말 공공의료원의 공적 역할을 고려하도록 기준이 바뀌면서 타당성 분석이 다시 진행 중이지만, 결과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의문이다.
이 때문에 500병상 규모로 짓겠다는 계획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병상이 줄면 의료진도 적어지고, 결국 심뇌혈관센터 등의 필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울산의료원을 시장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다.
보건 전문가들은 공공병원 역할을 돈으로 따지는 자체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돈이 안 돼서 민간병원에서 하지 않은 일을 공공병원을 설립해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돈으로 평가하는 수익성이 나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감염병 관리나 지역보건사업 효과 등 공익적 목적일때는 아예 예타 면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락 시의회 운영위원장은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은 고령친화도시로의 전환에 따른 노인인구 증가와 의료수요 확대, 심뇌혈관질환 등 중증응급환자 관리, 공공보건 의료사업의 원활한 수행, 국가적 감염병 발생 시 지역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처를 통해 시민 생명과 건강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1일 부산 해운대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 ‘대한민국시도의회운영위원장협의회’ 제10대 전반기 제5차 정기회에 참석해 ‘울산의료원 건립 타당성 재조사 통과 촉구 건의안’을 상정했고, 이 건의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건의안에는 울산은 치료가능사망률이 서울과 비교해 인구 10만 명당 3.8명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공공의료원 등의 전반적인 의료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이므로 울산의료원의 조속한 타당성 재조사 통과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정치권·시민단체도 한목소리
기재부의 울산의료원 타당성 재조사 결과 발표가 임박하면서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타당성 재조사가 대규모 감염병 관리나 지역 보건사업 추진 효과 등의 편익을 추가로 확대 적용하기로 한 첫 사례이지만 여전히 경제적 타당성이 기준치에 못 미치는 것으로 확인돼 자칫 울산의료원 설립 규모가 축소되거나 불발될까 하는 시민사회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읽혀진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은 지난 28일 논평을 내고 “울산 공공의료원 불발땐 지방소멸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당은 “최초 울산의료원 경제성 평가는 0.78이었으나 최근 재평가된 수치에서는 0.5로 하락해 제동이 걸릴 위기에 처했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확보된 예산은 물론 공공의료 확충의 실마리가 될 기회마저 무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같은 당 소속 이상헌(북구) 국회의원을 비롯해 광역·기초의원들도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울산의료원이 당장의 경제성 논리에 발목 잡혀선 안 된다. 공공의료원 설립은 단순히 병원 하나 짓자는 차원이 아니라,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감염병에 대비하고 고령화사회에 따른 만성 질환에 대응하는 등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정부는 울산의료원 설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의 조속한 통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울산건강연대도 “공공의료원 설립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안전과 생명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시의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시의회는 지난 24일 '울산의료원 건립 타당성재조사 통과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경제성 논리보다는 정책성 평가를 바탕으로 울산의료원 타당성 재조사 통과를 강력 촉구했다. 이 결의안은 대통령실과 국회, 울산지역 국회의원,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에 전달됐다.
기재부 발표가 임박하면서 울산시 속은 점점 타들어가고 있다. 울산의료원 설립의 타당성 확보를 위해 그동안 보완자료를 여러 차례 제출했지만, 심의 기준점에 미치지 못해서다. 시는 그동안 정부의 타당성 재조사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KDI, 기재부 등 관계기관에 3차례 걸쳐 보강자료를 제출하는 등 울산의료원 설립 당위성 피력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시 관계자는 “타당성 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향후 사업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