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독학으로 ‘서예의 숲’ 비림박물관에 비(碑)를 세운 서예가 허순자씨
〈8〉독학으로 ‘서예의 숲’ 비림박물관에 비(碑)를 세운 서예가 허순자씨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4.0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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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귀하고 행복하게 쓰고파”

사랑·희생으로 음지 찾아 봉사하고  
논어 맹자 주역 공부에 매진하면서
붓끝에 사군자의 고혹적 기품 그려
여러 서예대회 출품해 수상작 다수
서예가 허순자씨가 서실에서 독학 교재로 사용한 손 때 묻은 서예교본을 보여주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서예가 허순자씨가 서실에서 독학 교재로 사용한 손 때 묻은 서예교본을 보여주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수줍게 피어난 진달래꽃이 어우러져 봄의 성찬을 마련했다. 어린 시절, 앞산에서 따먹던 진달래는 배가 고파서, 목이 말라서, 맛이 궁금해서, 색깔이 고와서.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진달래처럼 드러내지 않아도 순수하고 다양한 매력을 지닌 여인을 만났다. 지난 달 9일 울산 울주군 삼남읍에 위치한 서실에서 만난 서예가 허순자씨는 격의 없이 모든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성품을 지닌 듯 했다. 서실에는 그동안의 세월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작품들로 즐비했다. 여러 서체의 서예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표현한 서화는 그윽한 묵향을 풍기며 천상의 기품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먼저 얼음을 뚫고 새싹을 피운 청보리차를 웰컴티(tea)로 정갈하게 내어 놓았다. 담백하고 산뜻한 차의 향은 꿈에 부푼 아리따운 봄 처녀의 모습처럼 마음을 흔들어 놓고 그의 작품 속 봄을 향유하는 듯 했다.  

유쾌하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20대 초부터 노인대학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레크레이션 강의를 하며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사랑과 희생으로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2011년에는 대한매일신문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지도자 대상’을 사회봉사부문에서 받은바 있다. 함께 놀아주고 말벗이 되어 준 그에게 “어르신들이 고맙고 예쁘다며 주신 귀한 돈 천 원을 모아서 서예교본을 사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며 “지금도 가보처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25세부터 서예의 매력에 빠진 그는 비장한 각오로 학원 문을 두드렸다. “무심코 들어간 학원에는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보이는 선생님이 계서서 잠시 꺼려졌으나 강의를 듣는 순간 선생님은 빛이 났고, 인품과 실력이 돋보여 누구보다 위대한 선생님으로 보였다”며 선생님의 훌륭한 성품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일 년 간 서예를 배우고 결혼과 연이은 출산으로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서예 공부에 대한 갈증은 계속 남아 서예 교본을 구해서 독학을 했다”고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것이 첫 번째 서예 교본이다”며 꺼내 보여준 책은 역사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낡고 테이프로 덧댄 부분이 많았다. 독학으로 사용한 몇 권의 책은 그의 끈기와 도전을 보여주는 대단한 무기이고 보물이었다. 바위를 뚫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니라 그 꾸준함이란 말을 실감나게 하는 산물이었다. 지금의 실력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남편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약혼까지 한 진취적인 그는 “남편은 곰탕 같은 사람이다. 우려낼 대로 우려내 진하고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며 남편을 평가했다. 그러나 남편은 지금 곁에 없다. “작년에 지병으로 먼저 가신 남편을 영원히 마음속에서 내 보내지 못하고 살 것 같다”며 애절하고 간절한 사랑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혼자가 되었다고 결코 외롭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원 없이 사모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8명의 보석까지 내게 안겨주고 떠났다”며 오히려 감사해 하는 그다. 

슬하에 8명의 자녀가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내게 “언젠가 행정복지센터에 수업을 받으러 갔을 때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의 슬픔과 가슴앓이를 지켜보았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인데 하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을 어찌 받지 않을 수 있나, 주시는 대로 받아 너무 행복하다“ 고 말했다.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 남편을 선택한 것과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이다“ 고 말하는 그는 양 볼이 발그레 수줍게 피어난 진달래를 닮았다.

아이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그는 다시 한 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 한 명이 잘못한 일이 있어 추운 날씨에 베란다로 내보내 벌을 주었다. 잠시 뒤 베란다 쪽을 보니 아이들 모두가 서로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며 “그 모습을 보니 화는 눈 녹듯 녹아버리고 감사함과 행복만 남았다”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렸다.

“나와 남편은 8남매와의 따뜻한 동행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고 세상을 다 얻은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으로 서예를 중단할 고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남편의 외조가 빛났다고 한다. 서예를 그만두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다 새어나가도 콩나물은 잘 자란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서예가 허순자(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충남 예산 비림박물관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가족과 찍은 기념사진.
서예가 허순자(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충남 예산 비림박물관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작품 앞에서 가족과 찍은 기념사진.

“서화는 태교에도 도움이 되니 집안일에 신경 쓰지 말고 체력이 뒷받침 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적극 권유한 남편이 무척 고맙다”며 “남편의 그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인연의 끊을 놓고 먼저 보낸 남편을 회상했다.

그의 남편은 훌륭한 석공 기능 보유자였다. 비록 남편은 가고 없지만 울산 인근의 발길이 닿는 곳곳에 남편의 작품이 웅장하게 서서 그를 반긴다고 한다. “석공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섬세한 세공 기술로 돌에 글을 새기는 작업으로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보람이 있다” 며 ”이렇게 매력적인 가업을 다행히도 장남이 물려받아 이어가고 있다“며 장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명함에는 여전히 남편과 그의 이름이 앞, 뒷면으로 나란히 새겨져 끊을 수 없는 금슬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도 향교에서 맹자, 논어, 주역 등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신이 주신 선물 중에 가장 공평하고 귀한 것이 시간이다. 그 시간을 행복한 일을 하며 귀하게 쓰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라고 한다. 울산 서도회 회원인 그는 여러 대회에 출품하고 수많은 수상을 했지만 “작품이 끝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고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다수의 출품작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9년 전 충남 예산에 소재한 ‘서예의 숲’ 비림박물관에 출품한 작품이 입상을 하게 되어 돌에 작품 그대로 음양각으로 새겨 세워져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작년에 아이들과 그곳을 여행하고 훌륭한 분들의 작품이 돌에 새겨 수풀처럼 모여 있는 곳에 어머니의 작품이 있는 것을 보고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수줍어했다,

비림박물관에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작품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의 세종대왕, 정조대왕 등 왕이나 흥선대원군 이하응, 안평대군 등 왕족과 김구, 이시영, 윤봉길, 유관순, 손병회 등 독립운동가의 작품도 있다. 또한, 김생, 한석봉, 김정희 등 역사속의 인물부터 현재 활동 중인 명필가를 비롯해 국보급 글씨가 새겨 전시되어 있는 소중하고 멋진 예술혼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의 작품이 그 곳에서 빛나고 있으니 지금까지 공부한 시간과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남편의 직업이 석재 기능사였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작품이 돌에 새겨져 세워져 있으니 남편과는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여러 곳에서 강의 요청이 왔으나 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를 하고 싶어 고사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좋은 시나, 그림을 보면 작품의 작가를 만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서 만나고 마는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서실에서 가까운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단일 메뉴에 시골 어머니 밥상 같은 식당에서도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손님이 먹고 나간 자리의 그릇들을 정리하고 주인 할머니의 수고를 덜기 위해 손수 상을 차리기도 했다. 그의 봉사정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미 습관처럼 움직였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식당 주인 할머니를 꼭 안아주며 감사함을 전했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가 참 커 보였다. 정을 나누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고 행복을 주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붓을 놓지 않겠다”는 그의 집념이 사군자의 기품처럼 빛났다. 행복은 단순한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어느 한 분야에 깊게 몰입해서 도전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다. 도전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한 그의 노력은 최고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청보리처럼 순박하고 담백한 사랑을 나누고 진달래처럼 수줍은 듯 해맑은 그의 매력을 훔쳐본 하루는 선물 같은 봄날이었다. 진달래처럼 순수한 그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한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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