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여든 나이에도 시와 후학 양성에 힘쓴 목월 제자 김성춘 옹
〈9〉 여든 나이에도 시와 후학 양성에 힘쓴 목월 제자 김성춘 옹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5.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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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을 울산교직에서 보내고 도서관 산책으로 삶의 활기 충전

‘바흐를 들으며’로 ‘심상’1회 당선 
43년 교직에서 제자양성에 힘쓰고 
퇴직 후 동리목월 문학관에서 강의
시와삶 정답은 없으나 명답은 있어
카페에서 시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성춘 옹.
카페에서 시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성춘 옹.

땅 속을 헤집고 솟아나는 것은 힘이 세다.

고목의 딱딱한 껍질을 열어젖히는 새순의 힘 또한 경이롭다. 모든 피어나는 것은 새로운 힘을 발산한다. 꽃이 피고 지는 순환 속에 스승을 선양하는 제자 또한 경애의 대상이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청록파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수많은 제자 육성과 아름다운 시를 남겼던 박목월 시인의 제자인 김성춘 옹을 지난 달 13일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예술가임을 짐작할 수 있는 차림과 우수에 찬 눈빛이 깊은 자애와 존경심을 갖게 해 숙연해졌다. 

함께 자리했던 김성춘 옹의 제자는 그를 보는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 같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동리목월 문학관에서 선생님께 글공부를 배우면서부터 늘 연모해왔던 마음이 그리움으로 자라나 그저 선생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마력을 지닌 분 같았다.

그는 교사 출신이라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의 이름을 먼저 기억하려고 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늘 귀 기울이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으며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름을 불러 주며 용기를 주는 분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아침 식사가 끝나면 간단하게 가방을 챙겨 집 근처 대학교 시립 도서관을 출근 하다시피 하며 일상을 보낸다”고 근황을 전했다.

“독서는 시인에게 명약이니 이번 시집 ‘길 위의 피아노는 책 읽기가 마중물이 된 것 같다고 시인의 말에도 적혀있다“며 산뜻한 시집을 선물로 주셨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지금도 수많은 양서들이 즐비한 도서관이 놀이터이고 글방이라고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듯 청춘들의 풋풋한 내음에 섞여 익숙한 도서관 산책을 하는 것은 건강한 삶과 활기를 되찾는 비타민이다”며 도서관 산책을 권장했다,

책 사이를 걷기만 하여도 마음에는 책 향기가 묻어난다고 하였는데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는 자기를 깨고 더 크게 생각하는 괜찮은 사람의 향기인 것 같다.

그는 1962년부터 교직에 몸 담아 인생의 절반을 울산의 교직에서 보냈다. 학성고등학교, 학성여고 울산여상을 거쳐 무룡 고등학교 교장을 종착역으로 43년간의 긴 교직생활의 막을 내렸다.

74년 현대시학 등과 함께 우리나라 유명 시 전문지인 ‘심상’ 1회 공모에 ‘바흐를 들으며’가 당선되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울산문인협회에서 제 1회 문학상 본상을 수상했고 울산문협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인 아동문학가 강순아씨도 같은 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한 마리 흰 양’과 대구매일신문에 ‘하느님께 올립니다’ 라는 동화가 동시에 당선되어 등단하게 되었다니 대단한 인연임에 틀림없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서로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은 펜팔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서정적인 우연이고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상 제 1회 신인상은 박남수, 김종길, 박목월 3인이 공동 추천으로 이루어졌다”며 신인상을 받았던 때의 기쁨을 회상하는 듯 잠시 쉼표를 찍었다.

“당시 신춘문예 못지않은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배출한 문예지다”라고 심상을 평가했다.

그는 늘 박목월의 제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은퇴 후 울산대 사회교육원 시 창작과, 동리목월 문예 창작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시를 좋아하고 등단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 양성에 그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목월은 “제자를 아끼고 사랑했으며 진로를 터주는 일에 진심 이었다”고 전한다.

“목월 선생은 한국 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탁월한 음악성과 운율을 시에 담아내었으며 후배양성과 글 쓰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다고 한다. “목월의 제자 중 대표적 작가는 신달자, 유안진, 허영자, 오세영, 이건청, 나태주, 김성춘 등이다”며 창밖의 봄 햇살을 응시하며 스승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는 지금까지 14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돌아보니 삶도 시도 먼 길이었다.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삶은 호기심이고 심연이다’며 삶의 뒤안길에 선 마음을 표현했다.
“목월이 첫 번째 스승이라면 두 번째 스승은 사범학교 삼총사 중 한 명인 오규원 시인이다”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부산 사범학교와 부산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사범학교 삼총사라고 불리는 세 명이 있었다고 한다. 오규원, 이수익 그리고 그다. 오규원 시인은 김현승 현대문학 추천으로 (김현승 추천) 당선되어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소중한 벗이자 격의 없는 스승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매일 도서관 산책을 즐기며 일상을 보내는 김성춘 옹.
매일 도서관 산책을 즐기며 일상을 보내는 김성춘 옹.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독서와 주변 예술 (음악, 미술, 영화, 건축 등)에 관심을 가지고 삶에 대한 통찰과 시에 대한 화두를 계속 던지는 것이 기본이다”고 시에 대한 철학을 밝혔다.
최근에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울산의 시 동인지인 ‘수요 시’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는 무엇으로 쓰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는 “내 주변에서 시의 소재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삶의 기록, 삶의 반성문이 곧 시가 된다”며 시대성이 담긴 글이 좋은 글의 표본이라고 했다.

그는 “시는 쓸 때마다 처음 쓰는 것 같다”며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첫 행과 마지막 행을 어떻게 써야 할까 늘 고민하고 어려운 숙제다”고 한 편의 시에 담긴 시인의 고뇌를 피력했다. “늘 허공처럼 채워지지 않는, 완성되지 않는 것은 시도,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삶의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시는 결국 자신의 희로애락이 담긴 자신의 이야기다”며 “시인의 언어로 눈에 잘 띄게, 신선하게 감동적인 색칠을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시대의 삶을 시로 품어주고 시로 풀어내는 가장 본받아야 할 신사의 품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언젠가 ‘시의 정신은 선비정신이다’ 고 한 그가 그런 선비정신에 부합하는 시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도 시도 정답은 없지만 명답은 있다”는 명언을 전하는 그는 아내와 나란히 내년에 등단 50주년을 맞이한다.  

긴 세월로 겹겹이 쌓여 만들어 낸 그의 삶과 시가 봄의 서정을 품고 있는 듯하다. 

최근 출간한 시집 ‘길 위의 피아노’는 현재 독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손녀 온유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늘 시간 날 때마다 클래식을 즐겨 듣는 클래식 애호가다. 

‘먼 산을 보며 온유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또 듣는다’는 시인의 말에서 글로는 다 담지 못할 사무치는 그리움을 짐작해 본다. 그의 시 ‘바흐를 들으며’를 다시 읽어 본다. 지인을 떠나보내는 아픈 이별을 노래하듯 옅은 파장을 일으키는 바흐의 음악들을 생각한다. 박목월 선생이 그러했듯이 김성춘 선생님의 시와 음악 사랑이 모든 이의 가슴속에 오래 남아 빛나길 바라본다.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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