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낙동강 수계 지자체 물싸움에 물거품 된 ‘울산 물 상생 나눔’  
[뉴스&분석] 낙동강 수계 지자체 물싸움에 물거품 된 ‘울산 물 상생 나눔’  
  • 정두은 기자
  • 승인 2023.05.0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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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끝나자 불거진 물 전쟁 
운문댐 물 울산 공급 제자리
반구대 암각화 보존책도 뒷전
“희망고문 아냐” 회의론 비등

市, 댐 수문 설치시 식수난에
맑은 물 확보 수립 용역 진행 
울산시장, 물 찾아 항공시찰도
김두겸 울산시장이 지난해 11월 9일 신규 식수원 발굴을 위해 산불진화용 헬기를 타고 울산 전역의 댐을 항공 시찰했다. 사진은 헬기에서 찍은 댐 전경.(사진=울산시)
김두겸 울산시장이 지난해 11월 9일 신규 식수원 발굴을 위해 산불진화용 헬기를 타고 울산 전역의 댐을 항공 시찰했다. 사진은 헬기에서 찍은 댐 전경.(사진=울산시)

[울산시민신문] 도시와 물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크고 작은 도시들이 강을 끼고 발달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한정된 수자원을 둘러싼 도시들의 분쟁도 잦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물 자원 고갈을 우려해 벌이고 있는 대구-구미 간 물 다툼이다. 양 측의 분쟁에 정부와 낙동강 수계 지자체들이 세계 유산인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2년 전 협약한 경북 청도 운문댐 물 울산 공급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울산시는 운문댐 물 공급은 ‘희망 고문’이라는 판단에서 대안으로 별도의 자체 수원 확보를 위해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본지는 그동안의 진행 상황과 지역 여론, 울산시 행보 등을 짚어본다.

■운문댐 물 울산 공급 실타래 풀렸지만 

운문댐 물 울산 공급은 2년 전인 2021년 6월 환경부가 낙동강 수계 5개 광역지자체의 물 문제 해소를 위해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을 의결하면서 실타래가 풀렸다. 낙동강 취수원을 다변화하는 이 방안에는 ‘운문댐을 활용해 국보 반구대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한 물을 울산시에 공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매년 물고문에 시달리는 선사시대 세계 유산인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고자 대곡천 하류 지점에 있는 사연댐에 수문(3개)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고, 이 때문에 부족해진 울산시민의 식수는 운문댐 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정부 계획 확정 이후 대구 시민이 사용할 물의 일부를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끌어온다는 내용을 담은 국무조정실 주재의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서’ 업무협약이 지난해 4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체결됐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는 “(협약은) 기관 간에 합의가 된 것”이라며 “중간에 기관장이 바뀌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이 자체는 절대로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취수원 공동이용을 놓고 대구-구미 간 10년 넘게 이어온 갈등은 봉합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고, 울산시는 운문댐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시 측은 협약에 따라 운문댐에서 물을 공급받던 대구가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30만 t의 물을 취수하면, 그만큼 운문댐 물 활용에 여유가 생겨 울산 공급이 가능하리라 봤다. 

이 당시 송철호 울산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운문댐 물의 울산 공급에 청신호가 켜졌다”며 환영하면서 “반구대 암각화 보존과 맑은 물 공급을 동시에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선 국회의원·지방의원과 일부 주민들이 수자원 고갈, 수질 악화,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 성명서를 내고 집회를 하는 등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은 상태였다.

■단체장 바뀌자 다시 원점으로

아니나 다를까. 민선 8기가 출범하면서 물 문제는 다시 미궁으로 빠졌다. 울산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지방선거 이후 단체장이 바뀌면서 대구 취수장 이전은 원점 재검토 대상이 됐다. 협정 체결 이후 새로 취임한 홍준표 대구시장과 김장호 구미시장이 구미로 취수원을 다변화하는 사업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 둘다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이나 물 문제 만큼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구미는 시민 동의 절차 없이 추진한 임기 말 지자체 단체장들끼리 체결한 협정이어서 효력이 없다며 물 전쟁 발발을 알렸고, 이에 대구는 협정 해지 통보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대신 대구는 자체적으로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수원 확보에 나섰다. 경북 안동댐과 임하댐 원수를 공급받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안동시와 체결한 것이다.

정부 중재로 낙동강 수계를 함께 이용하는 인접 지자체들이 조금씩 양보해 맑은 물을 나눠먹기로 한 약속은 두 지자체간 다툼으로 인해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알아서 먹을 물을 구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상황이 된 것이다. 울산 맑은 물 확보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이 나오는 듯 싶더니, 지자체간 물 다툼에 휘말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섰다. 

이처럼 울산의 기대와 달리 대구지역 수원 추가 확보가 지지부진한 데다 대구가 수원을 확보한다고 해도 울산이 운문댐 물을 공급받을 것이라는 보장마저 없자 울산 지역사회에선 ‘운문댐 물 공급은 요원하지 않겠느냐’는 회의론이 비등하다. 희망 고문만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여기다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 의결 당시에도 ‘사업 착공 전까지 주민 동의를 구할 것’이라는 전제 조건을 내걸어, 운문댐 물 공급 현실화에 가장 큰 난관으로 꼽히는 대구·경북지역 설득 작업을 울산의 부담으로 남겨둔 상태다.

울산시 관계자는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은 정부 법정사무여서 장기간 시간이 걸릴지언정 무산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현재로서는 운문댐 물의 울산 공급을 위한 절차가 중단된 상태이며, 정부나 대구시 등의 의지와 협조가 필요한데 모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다소 답답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은 낙동강 유역 취수원의 다변화를 통해 부산, 대구, 울산, 경북, 경남 등 낙동강 유역 700만 주민의 먹는 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다.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총사업비 2조4959억 원을 투입한다. 환경부는 내년 기본 및 실시설계,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2025년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리기 위해 최근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한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있는 대곡천 일원.(사진=울산시)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리기 위해 최근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한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있는 대곡천 일원.(사진=울산시)

■울산 물·암각화 보존 정부가 나서야

울산시가 운문댐 물 공급을 시정 핵심인 ‘울산권 맑은 물 공급사업’으로 추진한 것은 현존하는 문화재 최고 가치로 평가된 반구대 암각화가 하루하루 물에 씻겨 제 모습을 잃어간 탓이다. 암각화 하단부의 고래와 고래사냥 그림은 선사인들이 인류 최초로 거친 바다를 누비며 고래를 삶의 현장으로 끌어들인 포경(捕鯨·고래잡이)의 역사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이 7000여 년을 견딘 암각화이나 침수와 노출, 침식이 해마다 반복되면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지도 오래됐다. 선사시대 조상들이 땀 흘려 그려줬더니 21세기 후손들이 보전도 못하고 빈사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와 국보 천전리 각석이 있는 대곡천 일원을 세계 유산 목록에 올리기 위해 유네스코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했다. 

매년 물에 잠기며 신음하는 반구대 암각화를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점에서 댐 수위를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은 울산시와 울산시민 모두 안다. 그렇다고 시민 생명과 직결되는 맑은 물 확보가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시는 수문 설치는 식수 확보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물 확보가 되지 않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정부가 중재에 나서 암각화를 물에서 꺼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문댐 수원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수문이 설치되는 경우 울산 생활용수는 1일 5만 t가량 줄어든 1일 13만1000t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가 대체수원 개발 없이는 사연댐 물을 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동안 시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생태제방, 유로변경, 카이네틱댐(임시 물막이) 설치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모형실험도 가졌다. 그런데 번번이 거액의 예산만 날린 채 흐지부지됐다. 암각화 훼손 문제는 어제 오늘 일 아니다. 살리자고 한 게 벌써 20년이 더 됐다. 그러는 사이 암각화는 상당 부분 망가졌다. 물길 돌리든, 수위 낮추든 빨리 물에서 건져 올려야 하는데, 보존책은 하세월이다. 

■시, 용역 통해 자체 상수원 확보 추진 

시는 현재 운문댐 물 공급과 상관없이 자체 상수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내년 5월 완료 목표로 ‘맑은 물 확보 종합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기존 댐 저수량 확충, 해수 담수화, 소규모 댐 개발 등 상수원 확보를 위한 방안이 폭넓게 담길 예정이다.

사연댐 저수능력을 키울 방법은 없는지, 대암댐을 식수댐으로 전환하는 건 경제성 때문에 안되는 건지, 소규모댐 건설이나 지하댐 개발은 어떤지, 바닷물 담수화는 동·북구의 물 부족 문제 만큼은 덜 수 있을지, 물을 재이용해서 수자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안 등이 망라됐다.

정부 계획으로 확정된 운문댐 물을 울산에 공급하는 취수원 다변화 방안은 대구-구미간 합의가 성사되지 않는 한 ‘희망 고문’에 불과한 만큼 안전한 물 공급을 실현할 장기적인 수원 확보 방안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김두겸 시장은 “사연댐 수위 조절로 울산시민이 맑은 물을 마실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으므로,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정부 정책에만 기대지 않고 자체적으로 맑은 물 확보와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시장은 앞서 헬기를 타고 식수원 찾기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9일 산불 진화용 헬기를 타고 신규 식수원 발굴을 위해 울산 전역을 항공 시찰했다. 김 시장이 둘러본 곳은 사연댐과 대곡댐·회야댐·대암댐 등 기존 용수 공급 댐 4곳, 2008년 ‘낙동강 하류 연안 지역 청정수원 조사 용역’에서 발굴된 (가칭) 소호댐 등 기존 소규모 댐 후보지 4곳, 최근 시가 찾아낸 (가칭) 신명댐과 작천댐 등 신규 소규모 댐 후보지 2곳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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