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료원 좌초, 지방이라서 홀대 받았나
울산의료원 좌초, 지방이라서 홀대 받았나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5.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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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겸 울산시장 “매우 유감”
경제성 논리에 밀려 또 좌절
市, 규모 축소해 3수에 도전
정두은 편집국장
정두은 편집국장

울산의료원 설립이 또 좌절됐다. 익히 예상했던 대로다. 경제성 평가서 빨간 불이 켜지더니, 타당성재조사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공공의료원 설립’을 경제성 중심으로 편협하게 평가한 게 이유다. 지방시대를 열겠다던 정부가 열악한 울산 의료 현실을 애써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다.

울산의료원 설립은 울산시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22만2000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범시민 서명운동’에 참여할 만큼 의료원 설립 의지는 강하다. 울산시도 이같은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해 의료원 설립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했었다. 북구 창평동 일대에 의료원 예정부지를 확정했고 설계비로 국비 10억 원도 확보했다. 하지만 지난 9일 정부가 화답한 것은 ‘통과’가 아닌 ‘탈락’이었다. 

울산의료원 설립이 처음 추진된 건 지난 2002년. 2년 뒤 첫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경제성 부족으로 무산됐다. 코로나19를 겪으며 2021년 12월 전격 추진된 울산의료원 설립은 예타 재조사까지 또 다시 2년여를 보냈지만 끝내 같은 이유로 좌절됐다. 이번 평가 결과도 지역의 의료 낙후와 공공의료 균형발전, 필수의료 수행 여건 등은 모두 경제성 논리에 밀려 반영되지 못했다. 

국민의정부 시절이던 1999년 생긴 예타는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경제적 타당성을 미리 검증하는 절차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고, 그 중 300억 원 이상의 재정이 지원되는 사업이 대상이다. 물론 이 제도가 생긴 것은 선심성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결정적 문제점이 있다. 공공의료원 경우 예산에 비해 ‘경제성’이 부족해 예타 문턱에서 좌절하기 쉽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김두겸 시장이 참담한 심정으로 언론브리핑을 했겠나. 김 시장은 정부의 예타 재조사 결과 발표가 나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정부의 이번 결정이 매우 유감”이라며 “울산시로서는 실망과 허탈감이 크다”고 밝혔다. 또 “경제성 중심으로 평가한 것은 지방에 대한 역차별이고,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던 정부 입장과도 상반된다”고 토로했다. 

울산은 전국 광역시·도 중 광주와 함께 지방의료원이 없는 도시다. 또 공공의료 비중은 병상 수 기준 1.1%로 전국 평균인 9.6%에 크게 못 미치는 전국 최하위이다. 2020년 12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할 당시 요양병원 환자들을 받아줄 병원이 없어 병원 전체가 코호트 격리되면서 한 달 만에 242명이 감염됐고, 24명이 숨졌다. 코로나 사태 3년 동안 타지역 병원으로 옮겨졌던 울산 확진자는 2000명이 넘었다. 

울산시는 의료원의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시민단체는 예타 재조사 대신 예타 면제를 주장한다. 역대 정권에서 보여주듯 이는 대통령이 적극 의지를 보인다면 가능하다. 그런데 울산의료원을 설립해 주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공공의료원은 특성상 경제성 평가 비중이 높은 예타에서 후한 점수를 받긴 어려운 구조다. 지역 균형 발전을 외치는 전문가들이 경제성보다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을 촉구한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사실 공공병원 역할을 돈으로 따지는 것은 문제다. 돈이 안돼서 민간병원에서 하지 않은 일을 공공병원을 설립해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돈으로 평가하는 수익성이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의료원은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병원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했다. 그런 점에서 시민 생명과 건강권 확보를 위한 울산의료원 설립에 경제 논리 잣대를 대서는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제 정부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울산시와 시민 모두가 열악한 울산의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전방위 노력을 모색할 때다. 

다행히 최근 국회에서 공공병원에 한해 예타를 면제하고, 조사 평가를 전문기관이 하는 내용의 ‘공공병원 신속 설립법’이 발의돼 경제성 부족으로 예타 문턱을 넘지 못한 울산의료원 건립 재추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이 법은 공공병원 설립 시 기재부의 타당성 조사 대신 보건복지부가 전문기관을 지정해 타당성 조사를 하고, 공공보건정책심의위가 공공병원 확충과 설립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도록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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