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인류사에 길이 남을 회화, 한국적 정서로 표현하는 김상원 화백
〈10〉인류사에 길이 남을 회화, 한국적 정서로 표현하는 김상원 화백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5.24 18: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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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는 않지만 강력한 멋과 매력을 지닌 소나무 화폭에 담아 

속도와 힘이 실린 현장사생 추구
감동과 울림이 있는 회화의 감흥
미학적 서사로 화폭에 담아내고파
김상원 화백이 '아트페어 대구'에 전시하기 위해 길이 14m 높이 3m의 작업 중인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김상원 화백이 '아트페어 대구'에 전시하기 위해 길이 14m 높이 3m의 작업 중인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는 대표적인 민중가요의 한 소절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는 단종에 대한 마음을 소나무처럼 푸르게 간직하겠다는 사육신 성삼문의 절개와 기품을 담은 시조다.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는 애국가 2절의 가사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굳은 절개를 지키려는 의지를 계절이 바뀌어도, 어떠한 시련에도 변함없이 제 모습을 지키려는 소나무에 비유했다. 

늘 푸른 기상으로 그 정서적 진폭을 담아내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소나무 그림의 거장 김상원 화백을 지난 4일 울산 울주군 두동면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김 화백의 작업실 뜰에는 그의 상징인 소나무와 라오스에서 공수해 온 무게 8~9t 정도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그 멋을 한껏 발산하며 먼저 시선을 끌었다.

그는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안 좋은 것이 섞이면 안목, 주관이 무너진다”며 조경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 화백의 소나무 작품(가로 3.33m, 세로 1.8m 500호)은 올해 2월까지만 해도 울산시청 현관에 전시돼 민원인들에게 소나무 숲을 걷는 것처럼 강렬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김 화백은 “울산의 상징성을 지닌 대왕암공원과 통도사 무풍한송로의 소나무 그림은 시청을 드나드는 시민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게 되었다”며 “그림은 보름에 걸쳐  완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 화백은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세계적 규모의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 높이 4.88m 가로 29.28m의 대작을 위해 작업실 벽에 이미 캔버스를 마련했으며, 현재는 그것의 절반 규모로 통도사 무풍한송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완성되기까지는 60여 일가량 소요될 것”이라는 김 화백은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작업에 임한다”며 리프트를 동원한 강도 높은 작업임을 암시했다. 그러면서 매일 채워지는 캔버스 위의 아름다운 풍경은 하루의 노고에 대한 위로가 된다고 했다.

김 화백은 “현장에서의 감정, 분위기, 사실감을 잃지 않기 위해 며칠이 걸려도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다”며 “나의 그림은 그 생생한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의 눈길에 닿는 이 미학적 서사를 온전히 담아내어야 비로소 그림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이다.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총력을 다해 그림에 임하고 있다”는 그는 승부사 기질 뿐만 아니라 ‘쟁이’의 근성을 지닌 프로였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그림은 거리나 입체감이 떨어져 한쪽 눈으로 그리는 평면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장 사생은 거리와 공간지각, 빛의 움직임, 속도와 힘이 제대로 붙는 그림입니다.”

김 화백은 “두 눈으로 보면서 붓질을 해야 살아있는 작품을 그려낼 수 있다”고 이같이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생명의 극적 감정이 깃들어 있어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림의 진경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김 화백은 “내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계획과 의지는 ‘신들신들’. ‘얼렁뚱땅’. ‘후다다닥’이 기본 요소다”며 붓을 들면 어떤 의도로 작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물을 보고 신들린 것처럼 물감이 무의식적으로 붓에 묻어 빠른 터치로 자기만의 그림의 세계를 완성한다고 익살스럽게 축약했다. 

그는 3년 전 중국의 황산을 3개월씩 세 번에 걸쳐 1년여 동안 여행하고 그곳의 수려한 풍광을 화폭에 담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무산됐다. 그는 “꼭 유명한 관광지의 풍광이 좋은 배경이 아니라 여행을 하다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으면 그곳이 곧 작품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량 미달의 그림이 몇 점이라도 섞여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가의 품격이 아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김 화백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버려진 종이에 집에서 키우던 소를 그렸고, 종이가 없으면 다 사용한 시멘트 포대 뒷면에도 그림을 그렸다. 김 화백은 “어린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가족이나 이웃이 칭찬을 많이 했고, 우쭐한 마음에 더 열심히 그렸는지도 모른다”고 그림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말했다.

울산시청 현관에 걸렸던 김상원 화백의 대왕암공원 그림. 주변 풍광과 소나무들이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울산시청 현관에 걸렸던 김상원 화백의 대왕암공원 그림. 주변 풍광과 소나무들이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재능은 감성과 지혜와 투지, 성향이 맞아야 비로소 그 재능이 빛을 발한다”는 김 화백은 그때부터 타고난 소질과 기질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김 화백은 “누구에게나 생의 특별한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나는 1972년이 가장 특별하고 잊지 못할 해로 기억된다”며 그때를 반추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당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개인 유화 전시회를 열었다”는 그는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액자를 맞추고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 기사에게 사정을 해서 20여개에 달하는 액자를 버스에 실어 운반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렇게 해서 내 생애 첫 전시회를 당시 ‘유미다방’이란 곳에서 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 해에는 경남도 학예발표회에서 우승하는 기쁨도 주어졌다고 하니 김 화백에겐 완성에 가까운 한 해였음에 분명하다. 당시에도 그는 일이 주어지면 꼭 해내고 마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고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김 화백은 20년 동안 현대미술에 몰두했다. 20세부터 시대정신에 빠져 시대에 유행하는 정신적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행위, 논리는 들어가나 감성이 없고 첨단적이고 파격적이었으나 본질을 중요시 하지 않아 사람의 감정이 실리지는 않았다”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재미있으면서 설레고 감동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그때부터 소나무의 아름다운 풍광을 캔버스에 담게 되었다”는 김 화백은 “가을쯤 기후조건이 바뀌면 연무현상 때문에 산이 흐려져 그리지 못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소나무는 그런 날이면 대비가 되어 더 진하게 와 닿았다. 그런 이유로 소나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소나무와의 깊은 인연을 설명했다.

김 화백은 “좋은 소나무를 만나면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하루에 소나무를 몇 개씩 그리다 보니 소나무에 대한 관심과 형태적인 멋, 그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강력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소나무를 오래 보고 있으면 소나무의 형태와 윤곽이 선명해지고 자신과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적당히 대충 보고 그리면 감동의 질감이 사라져 완성도나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수식어는 ‘한국의 소나무 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나무와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었으며 그 강인함은 소나무를 빼 닮은 것 같았다. 

현재 그는 높이 3m, 길이 14m의 대작을 그리고 있다. “무풍한송로를 중심으로 파란하늘, 푸른 솔, 뭉게구름, 빨간 망개, 붉고 노란 단풍, 시원한 계곡, 토왕성 폭포가 서서히 다가와 화폭에 담기면 그림은 완성된다”며 환희에 찬 표정이다.

오는 6월 22-26일 ‘아트페어 대구’에 전시될 그림으로 현재 완성도는 50% 정도이며 지금 작업 중인 작품 외에도 15점 정도가 전시된다고 한다.

김 화백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는 데는 발상의 깜찍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며 “심연에 빠지고 인고의 시간을 겪는 노력과 고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작품이 진실로 좋고 성공적으로 끝나면 더 거대한 작품을 구상중이다”며 “그 작품 속에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숲속에 있는 느낌의 감동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김 화백은 “현재 미술계에서 시류를 반영한 디자인적인 평면그림이 대세를 이루고, 정통 회화부분은 작품성도 높게 평가하지 않을뿐더러 사라질 위기에 있는 추세여서 안타깝다”며 “뛰어난 작품성뿐만 아니라 규모면에서도 당당하게 압도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나의 자존심이자 사명감”이라며 결의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그는 늘 작품에 임할 때 “‘사후에도 능가하는 그림이 있을까’라는 일념으로 전혼을 다해 그린다”며 “전 인류의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을 그려 내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것”이라고 작업에 임하는 생각을 토로했다.

김 화백의 그림에는 “그림은 그림다움이다. 시대정신, 철학, 새로움, 시류 다 좋지만 본질에 충실함으로써 멋진, 아름다움의 감동이 울려오는 그림, 시공을 넘어 전해지는 회화의 감흥을 담은 그림, 화가의 감각과 집념으로 이루어지는 그림, 그런 그림이 내가 꿈꾸는 그림”이라는 평소의 철학을 담고 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수의 개인전과 수차례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는 그는 어렸을 때 장래희망이 시인, 대화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대화가가 꿈이었다면 감동의 진폭이 큰 자연을 담아내는 그는 분명 대화가임에 틀림없다. 김 화백의 원대한 이상향이 현실로 이루어져 작품의 감상이 감동으로 덧칠되길 바란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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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연 2023-05-26 16:29:43
김상원 화백의 그림 앞에 서면 그자리에서 머물게 합니다. 특히 화가와 감상하는 우리를 자연으로 묶어놓고 그림이 아닌 實相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오래오래 계시면서 저희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