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뭐라도 하나 더 가져올려는 지방 vs 그런 지방에 손사래 치는 '예타'
[뉴스&분석] 뭐라도 하나 더 가져올려는 지방 vs 그런 지방에 손사래 치는 '예타'
  • 정두은 기자
  • 승인 2023.05.25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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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의료원이 왜 필요하냐고?...“울산시민, 부글부글”

지방에서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예타
총선포퓰리즘 의식해 기준완화 없던 일
지방 살리기 위한 예타 기준 손질 필요
김두겸 울산시장이 지난 9일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울산-양산-부산 광역철도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 선정과 울산 의료원 건립 타당성 재조사 결과에 대한 언론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 시장은 철도 건설이 예타 대상에 오르자 환영한 반면 1년여에 걸쳐 예타 재조사를 받은 울산의료원이 탈락하자 유감을 표하며 사업 규모를 줄여서라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지난 9일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울산-양산-부산 광역철도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 선정과 울산 의료원 건립 타당성 재조사 결과에 대한 언론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 시장은 철도 건설이 예타 대상에 오르자 환영한 반면 1년여에 걸쳐 예타 재조사를 받은 울산의료원이 탈락하자 유감을 표하며 사업 규모를 줄여서라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울산시민신문] 울산을 포함한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지역 발전 걸림돌로 여긴다. 지방이 소멸 위기에 빠진 데는 인구 감소, 저출산 등 여러 원인들이 얽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로 예타가 지목된다. 지방은 수도권 집중화가 점점 가속화하는 마당에 24년 전에 제정된 예타로는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지방에서 뭐라도 하나 더 가져올려고 해도, 그런 지방에 손사래 치는 게 서울 중심 지향의 예타라고 지적한다. 최근 예타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더라도 지방과 서울의 관점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방과 지역주민들이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이라고 외치는 예타의 양면성을 살펴본다.

■울산시 예타 놓고 희비
“숙원사업 탈락 실망...“사업 규모 줄여서라도 재도전”

지난 9일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심의 결과에 울산시 희비가 엇갈렸다. 숙원 사업인 철도 건설이 예타 대상에 오르자 환영한 반면 1년여에 걸쳐 예타 재조사를 받은 울산의료원이 탈락하자 유감을 표하며 사업 규모를 줄여서라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예타 대상에 올라간 ‘부산-양산-울산 광역철도’ 사업(추산 사업비 3조 원)은 부산 노포-양산 웅상-울산 무거-KTX 울산역을 잇는 총연장 48㎞ 규모다. 사업이 실현되면 울산 신복로터리에서 KTX 울산역까지 10분대, 부산 노포까지 30분대 생활권이 구축된다.

김두겸 시장은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철도 신설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며 “이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면 울산과 동남권 발전의 대동맥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함께 심의를 받은 울산의료원 추진 사업이 탈락하자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 시장은 “지역의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정부의 이번 결정이 매우 유감스럽다”며 “전국 광역시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공공병원 하나 없는 도시가 울산인데, 이번 평가에서도 지역의 의료 낙후나 공공의료 균형발전 등이 경제성 논리에 밀려 반영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울산은 지난 2020년 12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할 당시 요양병원 환자들을 받아줄 병원이 없어 병원 전체가 코호트 격리되면서 한 달 만에 242명이 감염됐고, 24명이 숨졌다. 코로나 사태 3년 동안 타지역 병원으로 옮겨졌던 울산 확진자는 2000명이 넘었다. 

울산시가 코로나 팬데믹 사태 당시 열악한 의료 현실을 실감하고 의료원 설립을 추진한 이유이다. 시는 북구 창평동 일대에 500병상 규모(총사업비 2880억 원)의 의료원 예정부지를 확정했고 설계비로 국비 10억 원도 확보했다. 김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병상 규모를 줄여서라도 재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예타 대상에 오른 울산-양산-부산 광역철도 위치도.
예타 대상에 오른 울산-양산-부산 광역철도 위치도.

■지방 “예타, 통곡의 벽...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도입된 예타는 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 재정 지원이 300억 원 이상 투입되는 대형 사업의 객관성, 투명성, 일관성 등을 따지는 제도다.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 대응 등 필요한 경우에는 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예타 기준 잣대는 강산이 두 번 반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방은 예타를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인구가 밀집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만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수도권은 더욱 커지고 지방은 소멸 위기에 빠지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다.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이 지역 발전과 숙원 사업을 추진할려고 해도 경제성 비중이 높은 예타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지방이 예타 면제 기준 완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물가상승, 재정규모, 원자재 인상 등을 감안하면 24년 전에 제정된 예타는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예타는 △경제성 분석(30~45%) △정책성 분석(25~40%) △지역 균형발전(30~40%) 등 3개 분석지표의 평가점수에 따라 좌우되는데, 이들 지표 중 가중치를 어디에 더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지방의 주장인즉, 아무리 동일한 기반시설 사업이라도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과 소멸 중인 지방의 예타 결과는 애초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예타 통과의 핵심이 경제성인데, 인구 소멸이 가속화돼 갈수록 경제적 타당성이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울산의료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임에도 지난 9일 예타 재조사에서 탈락한 것이 그러하다.

한 도시를 넘어 수많은 시민 생명과 직결된 공공병원 역할을 비용 대비 편익이라는 단순한 경제적 숫자만으로 사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미래 수요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들에 의해 언제든지 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울산의료원 예타 탈락 다음날인 10일 성명서를 내고 “코로나19가 끝나도 신종 감염병의 주기적 도래는 이젠 변수가 아닌 상수로, 어떤 얼굴로 찾아올지조차 예측할 수 없다”며 예타 면제를 강조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울산시민들이 의료원 설립을 요구하며 범시민 서명운동에 동참한 것도, 울산시가 재도전을 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최근 국회에서 공공병원에 한해 예타를 면제하고, 조사 평가를 전문기관이 하는 내용의 ‘공공병원 신속 설립법’이 발의돼 경제성 부족으로 예타 문턱을 넘지 못한 울산의료원 건립 재추진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울산의료원이 예타에서 탈락한 다음날인 지난 10일 울산건강연대와 시민연대 등 울산지역 10개 시민단체는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병원이 없어 시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지역 실정이 중앙정부가 내세운 경제논리에 외면당했다고 주장했다.
울산의료원이 예타에서 탈락한 다음날인 지난 10일 울산건강연대와 시민연대 등 울산지역 10개 시민단체는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병원이 없어 시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지역 실정이 중앙정부가 내세운 경제논리에 외면당했다고 주장했다.

■“총선용 포퓰리즘” vs “균형발전” 논란 확산 

최근 예타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면 지방과 서울의 시각 차이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예타 면제 기준을 1000억 원(국비 500억 원 이상)으로 완화를 추진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예타 완화법)을 내놨다. 법안은 24년간 인상되지 않았던 예타 면제 사업비 기준을 현실화하고 예타 기준을 충족하기 어렸웠던 지역에도 발전 사업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자 수도권 정치인과 서울의 언론은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내용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연일 써댔다. 경제·효율성이 떨어지는 선심성 사업이 남발될 것이라고 쏘아댔다. 

결국 예타 문턱을 낮추는 이 법안은 국회 기재위에서 보류됐다. 서울은 즉각 환영했고, 지방은 통곡하며 다시 상소를 올렸다. 

지역발전 전문가들은 “이미 지방의 경제 규모가 형편 없이 쪼그라든 판국에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사업 타당성을 따졌다간 예타를 넘어서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구 부족으로 이른바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늘 낮게 나올 수밖에 없으니 필수 인프라는 깔리지 못하고 다시 인구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도권 집중화가 점점 가속화될수록, 24년 전 제정된 예타 기준으로는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물가와 재정 규모 등 경제 상황이 급변한 상황에서 예타가 제 역할을 하려면 지역균형발전의 배점 항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타 개정안 답보상태... 속타는 지방
 
대규모 재정사업 추진 문턱을 낮춰 지방의 숙원사업 추진 길을 열어주는 예타 완화법이 지난달 12일 여야 만장일치로 기획재정위 소위 문턱을 넘자 울산 등 지방은 즉각 반겼다. 가뜩이나 예타에 불만이 많았던 지방은 “‘만시지탄’이나 소멸에 직면한 지방의 균형 발전을 위해 예타 기준을 현실에 맞도록 추진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예타는 경제성에서 비용 대 편익이 1을 넘어야 통과할 수 있는데, 수도권에 비해 갈수록 인구 밀도가 낮아지는 지방에선 수익성이 애초부터 나오기 힘든 구조라, 대형 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탓이다. 

하지만 기재위는 이 법안을 같은 달 17일 전체회의에서 처리하려 했으나 '포퓰리즘' 논란이 일자 상정하지 않았다.

법안 처리가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지방의 중대형 사업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울산시가 추진하는 R&D 비즈니스밸리 연결도로 개설사업은 KTX역세권 비즈니스 지구와 하이테크밸리 일반산단을 연결하는 길이 4.47㎞ 너비 20m 규모의 연결하는 것이다. 총사업비는 889억 원으로 추산돼 예타를 통과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앞서 시는 두 차례에 걸쳐 예타 대상 사업 선정을 신청했지만 예타 관문을 넘지 못했다.

지역발전 전문가들은 “선심성 사업의 남발이야 당연히 경계 대상이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지역 균형 발전은 갈수록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만큼 비현실적인 예타 제도에 대한 대수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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