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타인을 위한 삶, 장애우를 사랑으로 보듬는 이성웅 시인  
〈11〉 타인을 위한 삶, 장애우를 사랑으로 보듬는 이성웅 시인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6.14 15: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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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자체가 행운, 장애인 돌보미로 행복은 배가 되고

신(神)이 되어준 아들과
사슴같은 딸의 눈높이로
한없이 낮아지는 아버지
쌍둥이 손자는 최고의 행복
갤러리에 전시 중인 자신의 그림 옆에서 미소 짓고 있는 이성웅 시인.
갤러리에 전시 중인 자신의 그림 옆에서 미소 짓고 있는 이성웅 시인.

'꽃잎이  떨어져도 나무는 낙담하지 않는다’ 는 진리는 그의 시집 첫 말에 나온다.

불확실성의 시대, 이만큼 확실한 하루가 보장된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며 하루를 클래식 기타, 그림, 시와 바둑, 그리고 장애인 돌봄과 다섯 살 쌍둥이 육아를 하며 고된 하루를 놀이삼아 사용하고 있다는 이성웅 시인과의 만남은 큰 울림을 주었다.

5월의 가랑비가 태화강을 적시는 지난 달 25일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무척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의 삶의 궤적은 ‘엘콘도르파사’ ‘클래식25시’ 두 권의 시집에서 이미 아픔과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잘 드러나 있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신생아 때 떠나보내고 배구공만큼 큰 종양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에도 셋째 딸, 넷째 아들을 기적적으로 출산했고 덕분에 14년 전 신부전 말기로 생을 포기하다시피 할 즈음 목욕탕에서 아들이 그의 등을 밀며 “아버지, 엄마한테 들었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라고 아들이 건네는 말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연신 샤워기를 갖다 대며 아버지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아들을 안심시켰지만 두 달쯤 후 그가 입원한 신장 병동에 휴직을 낸 아들이 찾아와 나란히 수술대에 같이 누웠다고 한다.

그렇게 아들의 신장을 이식받고 ‘신을 낳다’라는 시에 ‘아이의 탯줄을 잡고 깨어난 세상, 얼마 만에 느껴보는 뜨거운 기류인가, 더 이상 빛은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덤을 내려주신 신은 거룩한 내 아이였다’고 썼다.

그는 “내 아들이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순간 이 행복은 없었을 것이다”며 지금도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아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딸은 늘 아픈 손가락이다. “엄마의 혹 때문이었는지 태어날 때부터 불안한 자폐증 증세를 보였고 고2때 버스에 하반신이 깔리는 충격으로 지적장애를 입었다”며 “그 충격으로 나도 신장에 이상이 오고 결국 말기 신부전으로 간 것 같다”며 가슴 아팠던 기억에 한동안 말을 잊었다.

그런 딸을 생각하며 ‘사슴’이란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너의 정신에 감겨있던 태엽, 언제 멈추었는지 알 수 없었지, 거짓 없는 세상을 고집하는 눈빛을 보며 아버지란 길목에서 주저하고 흔들렸지,.. 굽은 나무는 굽은 나무끼리 잇대듯 너의 눈높이에 맞게 굽어지려고 아버진 오늘도 한 뼘씩 낮아진단다’

딸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흘린 눈물과 인내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남다르게 바꿔놓았다. 눈높이를 낮추어 가는 생도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매일 한 뼘씩 낮아지는 것을 선택해 평행을 유지하려고 한다.

“비록 난시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미운 딸이지만 나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딸이다”며 “내 딸이 내 생애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힘들게 쌍둥이 손자를 안겨 주었다”며 “쌍둥이 외손자 육아는 사위와 딸 대신 나와 아내가 거의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신생아 때는 16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지 못한 채 먹이고, 갈고, 달래고, 재우고, 응급실을 뛰어다니며 힘들었지만 쌍둥이가 나에게 주는 행복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비록 몸은 힘들어도 할비를 찾는 다섯 살배기 쌍둥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못다 한 꿈을 펼치기 위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통계학 품질경영 (QC)1급 자격증을 독학으로 취득하고 품질관리 부서로 옮기며 인생역전을 했다. 그후 36년 몸담은 회사를 퇴직하고 한국표준협회 (KSA)에서 기업체 지도 컨설턴트로 2년간 재임하고  장애인 복지관에서 일을 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복지관 환경과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학생들을 선도하는 일도 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줄 따뜻함이 절실했다.

학생들과 부모님의 어둠을 걷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내 딸처럼 여기고 대화와 칭찬을 하다 보니 물꼬가 트이고 눈물을 보이며 태도가 놀라울 정도로 바뀌어 갔다. 얼마 후 학교에 잘 적응해 선행으로 교장 표창장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가혹한 현실에서 빗장을 걸어버린 아이들과 매일 소통을 시도했다. 좀처럼 빗장을 열지 않는 아이들에게 그는 자신의 아픔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들의 편에서 말을 걸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그들의 쓰디쓴 일상의 대화는 커피 향처럼 친근하게 다가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다. 

“학교라는 무거운 중력 속에서 친구들에게 놀림 당하던 시간에 머물러 자신을 괴롭힌 친구와 매몰차게 대했던 선생님 이름을 일기에 적곤 송곳으로 콩콩 구멍을 내며 매일 지적인 일기를 쓰는 아이에게 친구를 미워하는 일기 대신 매일 시 한 구절 같이 쓰자며 시작한 것이 시인 못지않은 내면의 표현을 하는 밝은 아이로 변했다”고 한다.

한 번은 “외모가 준수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왔었다” 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켜 중도하차 직전인 학생이었다”다고 한다. 마음의 문을 닫고 거리를 두었지만 “잘 생겼다고 칭찬하면서 차가운 마음을 어루만져주자 울면서 나처럼 나쁜 놈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잘 해 줄 수 있냐며 학교로 돌아가면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당찬 결의를 다지며 떠난 학생이 늘 가슴에 남는다고 했다. 

누구나 그를 만나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어둔 삶에 한 줄기 빛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몇 년 전 장애인 복지관을 그만두고 장애인 돌보미 일을 하고 있다. 할머니와 살고 있는 중복 자폐증 학생은 아무도 돌봐 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이중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에게 그의 존재는 구세주였다. “처음에는 학생을 운동시키고 언어, 스포츠 수업을 병행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하는 그는 “내가 아니면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줄 사람이 없었고 학생은 외부와 차단되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고 한다.

“학생과 함께 한 지 2년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한마디도 못했던 학생이 지금은 내 가락에 맞춰 어설픈 노래를 부르고 산책하며 덩실덩실 춤도 춘다”고 한다 “늘 슬픔에 갇힌 두 사람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하고 싶어 막연하게 시작한 일이 지금은 매일 웃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며 참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는 5월의 신록처럼 눈부셨다.

그를 만난 후부터 웃음을 되찾고 한 마디 한 마디 늘어가는 말과 노랫가락에 할머니는 늘 감사하다며 그가 아프거나 힘들어서 떠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면 “할머니 저는 이 아이가 좋아요. 언제나 함께 할 겁니다” 라고 안심을 시켜 드린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의 몸과 마음이 평온을 되찾고 공공근로를 하게 되어 쌍둥이 등교 후 할머니를 일터로 출근시켜 드린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시간밖에 없다는 그는 분, 초 단위로 쪼개어 사용해도 부족한 시간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고 기타, 그림, 시, 기체조 등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욕심쟁이다.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쌍둥이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다”는 그는 여행보다 쌍둥이 육아에서 얻는 보람이 훨씬 크다며 손자를 돌보며 느끼는 희노애락을 시로 표현하는 일이 흥미롭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우연히 한 언론사의 문학 공모 기사를 아내가 보고 신인문학상 상금 때문에 권유했다”고 한다. “운 좋게도 공모한 시가 당선되어 시인의 길을 가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특수한 경험의 정서를 읽어내는 힘을 지닌 그는 천생 시인이다.

그를 울고 웃게 하는 쌍둥이 손자는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을 다니지만 “엄마의 정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할아버지인 나에게 모든 투정과 애정을 쏟아 붓는다”며 부모에게서 받지 못하는 허한 공백을 채워주려고 정성을 다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물 겨웠다.

“쌍둥이는 나의 많은 것을 쓰러뜨리게 하고 많은 것을 다시 일으켜 세워 사랑으로 채우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며 “가끔 삶의 무게가 버거워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 삶의 행보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하는 그는 “사람은 누구나 사명감을 갖고 태어난다. 내 앞의 일에 주인이 되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며 어떠한 삶도 환대한다고 했다.

그는 ‘남을 위해 등불을 밝히면 내 앞이 밝아진다는 성훈을 지론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인간애, 즉 타인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랑이 가득한 그는 들판의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까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가슴 아릴 만큼의 애정을 지니고 그 모든 것을 시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극대화시켜 어떻게 변주하는가에 따라 내 삶의 좌표는 달라진다. 타인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그의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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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향 2023-06-15 08:48:49
시인의 굴곡이 묻어 나는 삶과 깊이를 잔잔한 감동으로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