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팔색조의 꿈을 꾸며 여생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송당 박종해 시인
〈12〉 팔색조의 꿈을 꾸며 여생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송당 박종해 시인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7.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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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문학관 창설로 후배 양성과 울산문학 발전에 이바지 

도산서원장 박용진의 장남으로
국립 3.15 민주공원 시비 건립
한글학자 최현배 칸타타 작시와
정자바닷가에 ‘바다연가’시비도
울산 문화예술계의 원로 박종해 시인이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사진은 박 시인이 자신의 호를 따 설립한 ‘송당문학관’에서 자신이 집필한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울산 문화예술계의 원로 박종해 시인이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사진은 박 시인이 자신의 호를 따 설립한 ‘송당문학관’에서 자신이 집필한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한 해의 절반을 폭식하고도 무엇이 부족한 지 7월의 폭염과 장마는 성질대로 놀고 있다. 무더위를 살라먹고 핀 무궁화 꽃은 장대비에 몸을 움츠린 기색이다. 여름 내내 몽우리를 준비하여 비가 그치면 두 팔을 번쩍 들고 꽃을 활짝 펼쳐드는 형상이 마치 독립만세를 외치는 기세다.

우리 민족과 결을 같이 하며 영광과 좌절을 함께 해 온 무궁화 꽃을 보며 박종해 시인(울산예총 고문)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궁화 꽃이 활짝 핀 지난 2일 만난 그는 울산시 북구 박상진로 박상진 의사 역사공원으로 향했다.
영문도 모르고 동행했지만 서서히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박 시인은 1942년 북구 송정동에서 태어났으며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인 박상진 의사와는 재종질(7촌 조카)이다.

박상진 의사의 생가에는 그의 고택 한켠을 옮겨 놓은 격조 높은 양정재(養正齋)가 자리하고 있어 그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다. 박상진 의사의 삶의 궤적에 대한 설명은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 무궁화 꽃에 오버랩 되어 생생하게 피어났다. 생가에서 만난 박 의사의 증손자는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서적이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유학자 창릉 박용진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 시인은 “사랑방에선 선비들이 문학의 담론을 펴며 시를 읊는 소리를 들었고, 행랑방에선 머슴들의 고달픈 푸념을 들으며 성장했다”고 한다. 서로 상반되는 생각과 삶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 간극의 괴리가 그의 배후에서 문학의 씨앗으로 움트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박상진 의사의 일대기가 적힌 연보를 보고 있는 박종해 시인.
박상진 의사의 일대기가 적힌 연보를 보고 있는 박종해 시인.

박 시인의 시는 견고한 윤곽으로 구석구석 스며들어 3·15의거 뒤안길에도 민주 혼을 새겼다. 경남 마산 소재 국립 3·15 민주묘지 진입로 변 ‘시(詩)가 있는 길’에 전국의 유명 시인 10명을 선정하여 의거정신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시비 10기가 건립되었다.
이는 3·15의거 50주년을 기념하여 그날의 함성과 감격을 담아 이 길을 걷는 사람들과 그날의 역사가 포개지면서 민주화 첫날의 순결한 표징으로 삼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이 역사적인 곳에 그의 시 ‘자유, 민주, 정의의 고향’이라는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 남구·중구문학회 설립과 송당문학관 창설

그는 “나의 창작의 산실은 서재가 아닌 대자연의 열린 공간이다”며 “삼라만상을 보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 그 길 위에 나의 창작의 산실이 있다”고 말했다.
“38년의 교직생활을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노자의 무위자연설처럼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자연회귀의 시로 정감 있게 표현한다”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2021년 2월 자신의 호를 딴 ‘송당문학관’을 창설했다. “이곳은 문학 강연. 시 낭송회, 문학행사 등을 비롯해 많은 문인들에게 열린 공간, 베풀 수 있는 문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며 “신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후학 양성이다”는 소회를 밝혔다.

“나 같이 노쇠한 사람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문학에 몰두하는 작가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무대 위로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며 변방에서 꿈을 꾸는 작가들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7년 울산중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54세에 대구 최연소 교장으로 취임했고 2004년 대구 동부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교직 시에도 많은 문인들과 창작의 고뇌를 서로 나누며 불면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한 때 좋아하는 시를 수없이 암기 할 정도로 시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으며 이는 많은 문우들을 놀라게 했고 그에게서 본받을 점이라고 주위 문인들은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울산은 문인들을 위한 공간과 독려가 많이 늦은 편이다”고 말하는 그는 “문학 활동을 하는 문인들의 위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남구, 중구 문학회를 설립했다“며 ”당시 남구청장, 중구청장을 직접 만나 문학회 설립의 취지와 목적을 명확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그의 뚜렷한 생각이 관철되어 많은 문인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이 마련되었으니 이는 진정성의 승리인 것 같다.

또한 “시사랑, 울산사랑을 창간하여 시민정서를 순화시키고 울산 향토를 사랑하는 정신을 고양하려는 취지로 전국 유명 시와 울산에 관한 시를 실었다“는 그는 울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동석했던 그의 제자인 송당문학관 관장이자 남부문학 회장인 신진기씨는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잠시 멈출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시상이 떠올라서일 것 같다”고 말하며 “시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이시다”며 잔잔한 물결로 일렁이는 옛 기억을 반추했다.

■ 최현배 칸타타 공연의 감동

그는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의 일대기를 시로 쓴 칸타타 ‘외솔의 노래’를 작사했다. 매년 가을 울산 문화예술회관에서 뮤지컬로 공연되고 있으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서울 시립예술관 세종홀에서도 공연되었는데 한 번은 공연이 끝난 후 나영수 지휘자가 “이곳에 최현배 선생 일대기를 작사하신 분이 계십니다”며 자신을 소개하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일제히 그를 향해 모아졌다고 한다. 

“그 감동과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작가의 삶에 더 충실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울산 북구 정자바닷가에 설립된 박종해 시비.
울산 북구 정자바닷가에 설립된 박종해 시비.

그의 글은 울산은 물론 전국에 울산을 홍보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1983년 경남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축시를 쓴 것을 필두로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대학교) 교가와 울산예총회가 작사, 울산 충혼탑 추모 시 등 그의 문학적 업적은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폭 넓다.

그의 발자취는 올해 봄 북구 정자해변에 ‘바다연가’라는 시비가 건립되어 또 하나의 족적을 남겼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문학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상하고 엄격한 자세를 많은 문인들이 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시인은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길을 열어주는 언어의 전달자가 아니겠는가”라며 “남은 일생 동안 나의 시가 어떻게 변모할지는 두고 볼일이지만 모호한 시의 안개 속을 명징하게 불 밝히며 외롭고 고달픈 시의 길을 부단히 걸어가리라 자신을 믿어 본다”며 앞으로의 행보를 언급했다.

어쩌면 좋은 시는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항상 순조로운 인생이 아니듯 난관에 부딪쳐 마음이 힘들 때 한 편의 시를 읽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 내면의 부유함을 간직할 수 있는 여유를 시를 통해 가져보면 좋을 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어느덧 여든이 넘은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시는 물론이고 울산의 문학 발전과 중앙문학과의 교류에 이바지하고 후학양성에도 대들보 역할을 하길 바란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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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향 2023-07-21 16:26:09
울산 문인들을 위해서 애쓰시는 모습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셔서 좋은 글로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