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의 슬픈 자화상
학교 현장의 슬픈 자화상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8.0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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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맞는 교사 늘며 교육·미래 흔들려
최근 5년간 정신과 상담·치료 26.6%
교사 외침에 계류중 법안 뒤늦게 추진
정두은 편집국장
정두은 편집국장

바닥으로 떨어진 교권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수업시간 도중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고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교사의 멱살을 잡는 일이 빈번하다. 피해를 호소하는 교사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례도 허다하다. 학교 측과 피해 교사는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그저 쉬쉬할 뿐이다. 교권이 추락하다 보니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 지도를 포기하기 일쑤다. 교사는 학생이 무섭고 학부모가 겁난다고 한다. 오죽하면 교단을 떠나고 싶어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겠나. 이것이 우리 학교의 현주소이자 슬픈 자화상이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나 교사의 교육 활동을 침해받는 사례는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담임 교사의 머리채를 잡아 당기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이 칠판에 비속어를 적어놓자 생활지도 차원에서 교사가 휴대전화로 촬영을 했고, 이 휴대전화를 학생이 뺏는 과정에서 봉변을 당했다. 중학교에서는 화장이 너무 짙다고 나무라는 담임 교사가 수차례 발길질을 당했다. 이 장면을 같은 반 학생들까지 목격했으니 피해 교사가 느꼈을 수치심과 참담함은 미뤄 짐작이 간다. 

울산교육청이 집계한 교권침해는 지난 2018년 78건에서 지난해 117건으로 급증했다. 모욕·명예훼손 68건, 공무·업무방해 15건, 상해·폭행 10건, 성적 굴욕감·혐오감 8건, 교육활동에 대한 반복적인 부당간섭 5건 등이다. 학부모 등에 의한 교권침해도 2018년 4건, 2019년 3건, 2020년 2건, 2021년 1건, 2022년 3건 등 끊이지 않고 있다. 교권이 이 정도로 추락했다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교사가 학생·학부모로부터 존경받기는 커녕 모욕·폭행에 노출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교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상식을 뛰어 넘는 학생과 학부모 대응으로 우울증을 앓는 교사들도 부지기수다. 울산교사노조가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원 1만13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7%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5년 사이 교권 침해로 인해 정신과 치료 또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교사도 26.6%에 달했다.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어렵게 된 현실이 교사들을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선호 직업이던 교사가 힘들고 어려워 기피하는 직종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권이 흔들리고 교사들의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무너지는 교단’에 대한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일은 아닐 터다. 그동안 교육 당국과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인 교권 침해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못 본 채 그냥 넘어간 것은 아닌가.

지난달 18일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던 2년 차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실관계는 확인해봐야겠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직 사회의 울분이 커지면서 각종 교사 커뮤니티에서는 진상을 규명하고 교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게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온·오프라인에서 펼쳐지고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개학 후인 내달 4일 고인의 ‘49재’ 의미를 담아 교사들이 각 학교에서 하루 병가를 내 파업 성격의 시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교권 추락을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매 맞는 교사의 문제는 결국 모든 아이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권이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지는 법이다.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사회적 공분이 일자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 붕괴된 교권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 여당은 교사의 정당한 지도엔 아동학대 면책권 부여, 교권침해 행위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등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법 개정안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초등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은 최근 월요정책회의에서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가 없는지 긴급 실태 조사를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교육청은 악성 민원 등 교육활동 침해 사례 전수조사를 실시해 사안에 따른 대응을 구체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학교 교사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은 크다. “교단이 무너졌다”는 교사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교육 붕괴 현실을 한탄하는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뒤늦게 정치권과 교육 당국이 대처에 나선 만큼 실효성과 과단성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 다만 교사와 학생의 인권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기 바란다. 교사와 학생의 인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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