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8.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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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곧 그 사람의 향기
숙성된 말과 공감능력은
따뜻한 위로와 용기가 돼 
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올해도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청포도가 익어가고 화무십일홍을 무색하게 하는 백일홍이 한여름 뙤약볕과 강렬하게 대치중이다. 백수를 누린 황금찬 시인은 평소 “꽃처럼 말하라. 그러면 네가 꽃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는 “네 음성은 물소리를 닮아라. 허공을 나는 새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라는 주옥같은 글귀도 남겼다. 물소리를 닮은 음성으로 꽃 같이 말한다면 듣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 하겠는가?

말은 곧 그 사람의 향기다. 꽃이 아무리 예뻐도 냄새가 좋지 않으면 곁에 두지 않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향이 좋은 난초는 방에 곱게 들여 놓고 눈길을 주고 정을 듬뿍 쏟는다.

말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말의 온도에서 느껴지는 함의에 따라 상대의 마음은 따뜻한 위로가 되어 삶의 용기를 얻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강수일수에 비해 역대급 강수량을 기록했던 7월의 장마는 많은 것을 앗아갔다. 장마야 하늘의 일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지만 장마로 인해 입을 수 있는 피해는 예측 가능하여 예방할 수 있는 일도 많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일들을 수수방관하다 일이 벌어지면 남 탓으로 일관하고 급기야 정치 소모전으로 일삼는다. 이러한 폐습은 악순환 되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은커녕 책임공방에만 난타전을 벌이고 있어 후진국 형 재해라는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채 피우지 못한 채 지고 만 이태원 참사의 수많은 희생자들이 그러했고, 14명의 희생자를 양산한 오송 궁평 지하차도 수몰 현장과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 채수근 일병의 사망 등 많은 곳이 인재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살려달라고 비명 같은 구조요청을 했지만 끝내 외면당한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은 장맛비에 잠겨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데 그들은 슬프디 슬픈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는 말로 공분을 사고 있다.

요즘 정치인들의 공감능력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의 가벼움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말을 하기에 앞서 내가 상대방이 되어보면 내가 하는 말이 어떤 작용을 하게 될지 알 수 있다. 재해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 네 탓 공방만 펼치기엔 국민의 시름은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은 수렁에 빠져 있으며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가장 강력한 힘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잘 숙성시켜 꺼내는 말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지만 설익은 말은 가시처럼 상처로 박힌다.
특히 시도지사들의 수해관련 언행에 ‘오만함의 극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물론 뒤늦은 사과와 유감 표명도 했지만 수재민과 국민의 분노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물난리에 가족을 잃고 평생을 동고동락한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비에 씻겨버린 망연자실한 눈물과 한숨을 생각하면 그들의 오만한 말이 얼마나 큰 망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거 당시 당선되면 국민을 위해 희생하겠다고 머리 조아리던 그 겸손했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가장 힘든 순간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국민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채 공감의 언어는 사라지고 모두가 내 탓이 아니라며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하급자에게 전가하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은 물론 미국도 전쟁이 발발하면 상류사회 귀족들과 지도자들이 국가 수호 최전선에서 창과 방패가 된다. 부당하게 나라를 빼앗기고 자유를 짓밟는 적에게 대한 정의로운 항거의 처절한 몸짓이다. 또한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 나라의 방패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정은 힘없는 사람들을 방패삼아 뒤로 숨어버리는 행태들이 만연해 그들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다.
지금의 풍요로움이 무색할 정도도 사회는 혼란스럽고 질풍노도의 시기다. 물질문명이 정신문명을 잠식한 위기의 시대다. 슬픔의 현장에는 진실 되고 따뜻함이 담긴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마음이 공감이고 공유다. 공유한다는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된다. 따뜻한 위로의 말이 곧 행복으로 연결되어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신선한 자양분이 된다.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 서로에게 전하는 고운 말 한마디가 힘든 시간을 가볍게 해 줄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말로 전하는 진심이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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