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지역분산화 시대 맞아 불붙은 ‘1호 특구’ 유치전
에너지 지역분산화 시대 맞아 불붙은 ‘1호 특구’ 유치전
  • 정두은 기자
  • 승인 2023.09.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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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제주 두 도시 선점경쟁 구도 속
에너지 생산 자급률 높은 지자체들도
별도 조직 꾸려 전략짜기 총력 태세
지난달 17일 롯데호텔 울산에서 열린 울산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 발표회.
지난달 17일 롯데호텔 울산에서 열린 울산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전략 발표회.

[울산시민신문] 국내 에너지 체계에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인구 절벽에 시달리는 지자체와 기업들은 에너지 체계의 변화를 앞두고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올해 5월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이 제정돼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6월 지역분산화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탄소세나 RE100 등 탄소 무역장벽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분산에너지로의 전환은 제조업 중심인 국내 산업의 국제 경쟁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

■송전비 절감·사회적 갈등 해소

분산에너지는 대규모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 등을 통해 생산되는 중앙집중형 에너지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력을 사용하는 지역이나 그 인근에서 만들어 쓰는 에너지를 뜻한다. 분산법은 이 분산에너지의 원활한 확산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제도 △통합발전소 도입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도입 △지역별 전기요금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간 울산을 비롯한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별다른 혜택 없이 혐오시설인 원자력발전소 등 전력 생산시설을 떠안고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전력을 보내는 만큼 전력 생산지 소비자에게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 왔다. 

분산법의 주요 골자는 대규모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망 건설에 수반되는 경제적 비용 및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해 지역 단위 분산에너지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전력수요의 지역분산화는 늘어나는 전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전력량을 대거 필요로 하는 데이터센터의 경우를 보더라도 2029년까지 설립 예정인 193곳 중 90% 이상인 182곳의 입지가 수도권에 신청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수도권 전력망은 현재 거의 포화 상태여서 새로운 전력수요를 수용하려면 지방의 대규모 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송전탑, 송전선로 등 설치를 놓고선 주민 수용성 문제 등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08년 시작돼 10년 넘게 갈등이 이어졌던 ‘밀양 송전탑 사건’은 송전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희생이 필요한지를 사회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은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전력 공급체계는 낮은 주민 수용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막대한 보상 등 경제적 비용도 발생해 현실적 공급대책으로서의 가치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새 에너지 지형 맞아 지자체 경쟁 돌입

분산법의 핵심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특구) 지정이랄 수 있다. 에너지 특구는 분산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규제특례 지역을 말한다. 특구에서는 발전사업자가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력소비자에게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 

에너지 자급률이 높은 지자체 입장에선 저렴한 전기를 앞세워 전력이 대량으로 필요한 이차전지,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 기업 유치를 기대한다. 또한 기술 개발·인력 양성에 대한 국비도 받을 수 있는 등 인프라 측면에서도 다른 지자체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분산법의 첫 수혜인 ‘에너지 1호 특구’ 지정을 놓고 벌써부터 지자체 간 경쟁이 불을 뿜는다. 현재 울산을 비롯해 제주, 부산, 전남, 경북 등 지자체들은 특구 지정을 위해 별도 조직을 꾸리고 산업시설 유치에 공을 들이는 등 총력전 태세를 갖춰가고 있다. 

지난 6월 20일 제주에서 열린 제1회 글로벌 분산에너지 포럼.
지난 6월 20일 제주에서 열린 제1회 글로벌 분산에너지 포럼.

객관적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곳은 울산과 제주이다. 두 도시가 타 지자체보다 한 발 앞서 유치전에 뛰어든 것은 특구 지정이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침체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 경북, 전남 등 에너지 자급률이 높은 타 지자체도 법 시행에 기대를 걸고 유치에 가세했다.

■특구 1호 선점 담금질 울산

울산시가 에너지 특구 지정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최근 유치한 이차전지 특구와도 무관하지 않다. 김두겸 시장이 산·학·연·관 에너지 전문가로 ‘추진단’을 구성해 특화계획 육성방안 수립에 나선 것도, 정부가 준비 중인 분산법 시행령에 울산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권의 협력을 요청한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이차전지 산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특구 지정이 핵심 전제이어서다.

울산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산업계와 학계 등 분산에너지분야 전문가 등 24명으로 특구 지정 추진단을 구성했다. 추진단은 경제부시장이 단장을 맡아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 주관의 울산형 분산에너지 활성화 이행안 수립 등 용역에 참여해 시행령 등 분산법 하위법령에 울산 사항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권 협조와 대정부 건의, 대한상공회의소 등 기업단체를 통한 여론화도 전개한다.

에너지 활성화 추진 전략도 타 지자체 보다 한 발 앞서 발표했다. 이른 대비로 특구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에너지 특구 선점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비전과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 확실한 청사진, 그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방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진 전략에는 활성화 단계별 이행안 수립, 특화지역 지정 선점, 지원센터 건립 추진, 분산에너지 데이터센터 설립 제안, 수도권 데이터센터 기업 유치 추진 등 5개 중점 과제가 담겼다. 지역의 에너지 수급 구조, 수급 현황 및 전망, RE100 수요 및 이행방안, 기업육성 및 전문인력 양성방안, 경제성이 확보되는 분산에너지 비즈니스 모델 창출, 분산에너지센터를 공공성 있게 운영하기 위한 거버넌스 확보 등이 포함됐다. 시는 지난달 17일 이런 내용을 담아 전국 광역단체 중 첫 발표했다. 

울산은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에너지 혁신도시로 지정되고 특화된 도시랄 수 있다. 국가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에너지경제연구원, 효율적 에너지 사용을 선도하는 에너지공단, 안정적 석유공급과 전략비축을 담당하는 석유공사, 전력을 생산하는 동서발전 등 분산에너지 체제 연구와 운영에 참여할 주체인 국책연구소의 분원과 유관기관이 모두 있는 지역이다. 

전력생산 설비도 원전 2기를 포함해 화력발전소, 연료전지 발전소가 있고 울산앞바다에는 총 설비용량이 6.2GW에 달하는 해상풍력을 개발하는 중이다. 여기에 2027년에는 300MW급 수소혼소터빈이 실증을 위해 가동하기 시작한다.

시는 특히 전력을 다량 소모하게 될 데이터 설치·운영이 필요한 기업을 지역 내로 신규 유치하거나 기존 기업의 활동을 원활하게 확대하기 위해 개발제한구역 해제 등 다양한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두겸 시장은 “울산은 신재생에너지인 수소, 이차전지, 부유식 해상풍력 등을 기반으로 분산에너지를 선도해 나갈 준비된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탄소없는 섬 제주, 민관 ‘합심’

분주하기는 ‘탄소없는 섬’을 지향하고 있는 제주도 뒤지지 않는다. 풍력 및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분산에너지 자원이 가장 풍부한 제주는 신재생에너지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며 민관이 합심해 움직이고 있다. 제주는 지난 2012년 에너지 자립과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자 ‘탄소없는 섬 2030’ 프로젝트를 발표한 이후 2030년까지 도내 전력 수요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 중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도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20% 정도로 주력 전원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이 높은 봄과 가을에는 실시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이 80% 이상을 웃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출력제어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출력제어란 전력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많을 때 전력망에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에너지 특구 지정이라고 확신한다. 특구에서는 전력 거래가 자유로워지면서 신재생에너지 과다 공급으로 발전기를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어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에 비해 과도한 전력이 생산돼 출력제어가 예상될 경우 전기를 저렴하게 판매해 수요를 올리는 방식으로 출력제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남는 전기를 한국전력 외의 전기판매업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어 관련 산업 육성도 가능해서다.

제주는 현재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해 출력량이 소비량보다 많을 경우 저장해 재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증사업 추진과 신산업 발굴 등을 통해 분산에너지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민관 합심으로 특구 선점을 위한 후속 조치에도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추진협의체를 통해 신산업 발굴과 특구 설계, 사회적 공감대 확산 등에 본격적이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는 어느 지역보다 앞선 정책으로 전국에서 분산에너지 선도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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