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소망을 담아 높이 높이 하늘로, 솟대쟁이 이구현 조각가
〈14〉 소망을 담아 높이 높이 하늘로, 솟대쟁이 이구현 조각가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09.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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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가 있는 언덕’에서
작은 깨달음으로 얻는 삶
솟대 테마마을 조성의 꿈
하늘 높이 날아올라 닿길
울산에 솟대 테마공원 조성을 염원하는 이구현 작가가 혼을 담아 세운 솟대들을 정성들여 설명하고 있다.
울산에 솟대 테마공원 조성을 염원하는 이구현 작가가 혼을 담아 세운 솟대들을 정성들여 설명하고 있다.

북쪽으로 삼태봉이, 동쪽으로는 동해바다가 내려 보이는 곳에 자리한 ‘솟대가 있는 언덕’은 한 눈에 보기에도 정성과 염원으로 켜켜이 쌓인 신비로운 곳이다.
시가지를 한참 벗어나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해발 500m 높이에 우뚝 솟아있는 솟대와 장승은 그날따라 자욱한 운무에 휩싸여 고즈넉하다기보다는 몽환적인 신비로움으로 맞아주었다,

누가 봐도 솟대쟁이의 공방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크고 작은, 높고 낮은 솟대들이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 나름의 소원을 담아 하늘을 열어 닿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지난 달 24일 산마루 아늑한 곳에서 만난 솟대쟁이 이구현 작가는 혼을 담아 세운 솟대들을 정성들여 설명하며 각각의 의미를 부여했다.

■솟대와의 인연과 솟대의 역할

“솟대의 작은 머리에 크고 깊은 생각이 들어 있다”며 “오늘도 새롭고 큰 희망으로 우뚝 솟은 솟대를 보며 몰입한다”는 그는 “작고 약한 것이 때로는 강하고 무거운 정신적 산물이 되기도 한다”며 솟대를 함축했다.

솟대와의 인연은 “가랑잎처럼 바스락거리던 내 삶에 한 줄기 빛처럼 찾아와 밝은 희망의 길을 열어 주었다”면서 “13 년 전 쯤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 휴가를 내고 쉬고 있던 중 TV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솟대 만드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며 불현 듯 솟대를 배우고 싶은 갈망이 솟구쳤다고 한다.

‘순간은 작은 깨달음과 그 깨달음의 자그마한 실천으로 인생이 바뀌고 엄청난 일들이 생긴다’는 말처럼 그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생각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다. 언젠가, 어느 곳에선가 틀림없이 마주쳤어야 할 그 인연으로 하여 그는 새로운 행복을 찾았고 땅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시작되듯 자신의 새로운 시작의 마디를 새기는 시초가 되었다. 

“솟대와의 만남은 운명의 길이었고 앞으로의 걸음은 솟대를 찾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길잡이가 되어 주고 싶다”며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찬연하게 밝아지는 것”이라고 마침내 만나게 된 솟대와의 끈끈한 행보를 정의했다.

“솟대가 내안에 온 날부터 솟대는 나를 지배했고 나는 그 속을 유영했다” 며 “그 후로 솟대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울산의 솟대 작가들을 무작정 찾아가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솟대를 알아가면서 구름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솟대에 미쳤다고까지 표현했지만 그 말조차 나를 행복하게 했다”며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고 나를 더욱 강하고 바르게 세운다”고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솟대는 지방문화와 세우는 목적에 따라 까마귀, 오리, 비둘기, 기러기 등으로 표현한다. 이 작가는 옛날 농경사회와 공동체 사회에서 가장 밀접했던 오리를 주로 신조(하늘과 대화하는 신령한 새)로 세운다.  삼한시대의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지방에 따라 소줏대, 솔대, 별신대, 진또배기로도 불린다. 특히 진또배기는 솟대의 강원도 방언으로 오디션 프로에 출연한 한 참가자가 열창을 하여 솟대보다 진또배기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새를 올려놓는 이유는 하늘과 땅, 물 모두를 아우르며 사는 짐승이고 천지사방 어디든 날아갈 수 있어 전령사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오리는 철새이고 물새라는 점에서 화재를 막아주고 농경에 필요한 비를 가져다준다고 선조들은 믿었다.

그는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워 놓으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가져준다”며 “곧 우리의 꿈이자 희망이며 오랫동안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전통 문화”라고 솟대의 가치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또한 솟대는 2004년 세계박물관 협회 총회에서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공식 상징물로 선정되었고 2006년에는 문화 관광부가 지정한 민족문화 100선에 포함되었다. 같은 해 광주 비엔날레 개막식 하이라이트 퍼포먼스에 당당히 소개되어 솟대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 세계 문화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솟대는 경포호와 동해안 해안선 사이에 낀 ‘강문’이라는 포구마을에 세워진 것이다. 약 5m의 신주 위에 세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가 얹혀있고 각 갈래마다 정교하게 만든 나무오리가 목을 길게 빼고 멀리 경포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곧 푸드덕 날아오를 것처럼 생동감 있다.

울산의 솟대 장승 작가 협회는 2015년 설립되었으며 10여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이 작가는 2010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 현재 울산 솟대, 장승 작가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태화강 봄꽃 대향연 솟대 전시회, 고래축제 참여 전시회 및 체험 등 솟대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기존의 솟대들은 나무토막을 잘라 새의 형상을 깎아서 앉히기 때문에 인위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어 정적으로 보인다”며 “내가 만드는 솟대는 자연과 인간이 만나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 조형 예술 작품이며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동적이다”고 표현했다.

■솟대의 보존과 계승 발전

솟대는 만주, 몽고, 시베리아, 일본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사를 지니는 대표적 민속신앙이었으나 현재 지구상에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값진 문화유산으로 우리에게 더욱 신비한 세계를 열어준다.

“울산의 솟대 역사를 살펴보면 KTX 역사 인근 구수리 마을에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솟대마을이 세워졌다고 박물관의 자료에서 전해진다”며 “그 역사적인 곳에 솟대 테마마을을 조성해 솟대의 맥이 보존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태화강 국가정원 십리대숲에 솟대 테마공원을 조성하여 가족 체험학습은 물론 우리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시민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본다”며 만년(萬年)의 꿈을 피력했다.

“하루도 손에서 솟대를 놓지 않을 만큼 솟대와의 매듭이 행복하다”는 그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 듯 높은 언덕에 자리한 이 곳은 묵중한 산의 침묵이 주는 감동과 공방에 불어오는 바람이 고풍스런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세상 번뇌를 다 잊게 한다”고 은유했다. 

“산에 오르면 소풍가듯 즐겁고 희열을 느낀다”는 그는 “산행 중 맘에 드는 소재를 만나면 그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고 잠을 잘 때도 꼭 품고 잘 정도로 신이난다“는 그의 모습에서 가슴 벅찬 삶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소재 하나가 왔다고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개를 조합해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품이 되는데 길게는 5년이 걸릴 때도 있다“며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애정을 덧붙였다.

“참나무의 포자가 바람에 날아가 소나무의 송진에 붙어 기생하면 옹이가 되는데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소나무는 죽게 된다. 그 옹이를 잘라 소나무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동시에 솟대의 주재료가 된다”며 자연과 공존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달빛만큼 깊고 은은했다.

“청설모가 갉아 먹고 떨어뜨린 솔방울, 흔한 오리나무 (오리봉나무) 열매가 귀한 재료가 되고 굽은 나무, 곧은 나무, 오래전 생명을 다한 고사목까지 모두 그 역할과 쓰임새가 다르다”며 자연 속에 들어가 소재를 찾고 자연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무용(無用)한 것들이 그에게로 와 또 다른 누군가의 소원이 되어 끝이 없어 닿지 못하는 하늘에 간절한 마음을 이어준다.

■솟대 테마마을 조성의 꿈

“솟대를 만드는 것은 나의 운명”이라며 “솟대를 찾는 분들에게 긍정의 힘을 전달하고 솟대 보존이 궁극적 목표다”는 그는 “솟대로 인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희망을 나누어 줄 수 있어 더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했다.

앞으로 공간을 더 잘 가꾸고 솟대 작업에 매진해 가족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편성하고 테마마을을 조성해 스토리가 있는 역사의 장을 마련하는 상상에 현실을 입혀본다.

그는 멈출 방법이 없거나, 멈출 방법을 모르는 뜨거운 열정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솟대를 더 높은 곳에 세워 간직하려 한다. 낯설게 마주한 오늘도 ‘솟대가 있는 언덕’에서 숨 가쁘게 전력으로 달리던 시간을 붙잡아 여백을 만들고 그 공간에 앉아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며 잃어가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 함이다. 하늘과 소통을 시도하려 직립으로 선 오리가 이구현 작가의 솟대 테마공원 조성을 향한 걸음을 채근하는 듯했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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