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불멸의 신화를 쓰는 고살풀이 춤 창시자 이희숙 명인
〈15〉 불멸의 신화를 쓰는 고살풀이 춤 창시자 이희숙 명인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10.1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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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살풀이 명인으로 등극해
찬란한 슬픔을 위대함으로
지역문화 전통계승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 명성 떨쳐
2023년 대한민국 국회 문화예술 초대전에 초청받아 고살풀이 춤을 추고 있는 이의희숙 장인.
'2023년 대한민국 국회 문화예술 초대전'에 초청받아 고살풀이 춤을 추고 있는 이희숙 장인.

어머니의 한숨과 웃음을 닮은 구절초처럼 자신을 불태워 타인의 삶을 빛나게 하는 여인의 애환 속으로 걸어간 하루는 먹먹했다. 스산한 바람과 고독한 빗줄기가 여름을 돌려세우고 가을을 맞이하던 지난 달 14일 중구의 한 카페에서 고살풀이 창시자 이희숙 명인을 만났다. 고행의 깨달음 있었는지 긴 세월 옹이 져 덧댄 바람결에 함초롬히 피어난 들꽃처럼 그는 고요한 눈동자에 흔들림 없는 눈길이었다.

그의 전부나 다름없는 ‘고살풀이’춤은 인생의 삼라만상을 긴 천으로 특색 있게 표현하는 위령무다.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고 인간의 12진살을 풀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재난, 재해, 인재 등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고(매듭)를 마디마디 묶은 천을 풀어주면서 맺힌 원한을 함께 풀어주는 민속춤으로 이희숙 장인만의 고유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 희노애락으로 귀결 된다”며 “누구나 삶의 걸음걸음에 굴곡의 마디가 생기기 마련이고 한 많은 우리민족의 정서적 해방이다”고 고살풀이 춤을 축약했다.

■ 울산에 정착하다 

그는 경남 밀양에서 밀양지부 민속 분과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울산 울주군에서 그의 춤을 널리 전파하고 그 맥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제의로 2004년 울주군 상북면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울주군 상북면은 청도, 밀양, 양산의 관문이며 욕심을 버리라는 메시지를 담아 상직적인 전설을 간직한 가지산 쌀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곳이다. 울산의 정신적 기원처가 되어 민간에 전해져 온 울산의 명소 쌀 바위에서 우리나라 위령문화를 정착시키고 일평생의 땀과 열정이 담긴 고살풀이 춤을 녹여 그 문화를 계승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정착했다. 그 후 우리 전통의 맥을 보존하려고 오랜 세월 홀로 고살풀이 춤에 천착해 호국의 달엔 매년 잊지 않고 추모제를 올린다.

"자연에서 주는 의식주의 메시지가 담긴 쌀 바위는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면서 17년 동안 쌀 바위에 올라 순국선열의 위령제와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한편 “경북 청도에서 쌀 바위가 청도 소재라는 압력이 들어와 각종 문헌과 자료를 찾아 쌀바위가 울산을 향해 있다는 명쾌한 설명과 강한 집념으로 울산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는 그의 노력에서 울산을 아끼고 울산의 문화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춤의 맥을 지키려고 밀양에 많은 것을 버리고 왔다”며 “인생에 자꾸만 들이닥치는 굴곡에 각인된 상처가 가시로 박혔다”고 한다. “울산에 정착해서 상북면 주민들에게 춤을 가르쳐 시연을 했고 그로 인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덕분에 진정한 춤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전, 보존하기 위해 시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인 ‘와이라 놀이마당’을 기획하고 봉사에도 앞장서고 있다. “내 인생에는 오로지 춤 밖에 없다”는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정착한 울산에서 춤꾼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나는 고살풀이 춤으로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뿌리를 내렸다. 그 곳이 울산이다”며 “울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세계로 펼쳐나가길 바랄뿐이다”며 “울산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지만 정작 울산은 나를 환대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서러운 울음을 꼭 물었다.

“만약 풍족한 생활환경이었다면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을 정도로 학연. 지연의 갈등은 녹록치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그는 지금도 그때의 설움을 잊지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난과 아픔의 시간이 없었다면 명멸하는 삶의 소중한 페이지들을 잊고 살았는지 모른다”고 풍요롭지 못함을 오히려 감사했다. 그는 “삶의 굽이굽이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내 안의 진심을 꺼내 보여 더 많은 진심을 이끌어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고살풀이 명인이 되다

2014년 그는 고살풀이 춤으로 당당하게 명인에 도전했다. 심사위원 5명으로 구성된 명인 테스트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설움의 한 가운데서 견뎌야 하는 시간과 맞닥뜨렸다. “심사위원들의 냉소, 트집 잡기, 예상 밖의 질문으로 거센 파도가 휘몰아쳤으나 그는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심사도중 휴식시간을 갖자며 퇴장을 했고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심사위원들은 다시 춤을 보여 줄 수 있냐고 질문했다. 그는 백 번이고 다시 출 수 있다고 강한 어조로 답했다.

이희숙 장인이 군사박물관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불멸의 영웅을 위한 고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이희숙 장인이 군사박물관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불멸의 영웅을 위한 고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그의 춤은 바람의 들고 남에 몸을 맡기듯 정형화 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다. 오롯이 자신의 감정으로 변주되는 춤사위로 즉흥적이고 창의적인 행위예술로 승화시킨다. 마치 바람 끝이 닿은 풀잎처럼 온 몸으로 음을 만들고 혼을 불어넣는다. 그의 공연이 끝난 후 심사위원 중 한 명은 “만약에 이희숙씨를 떨어뜨리면 우리나라의 공옥진을 다시 한 번 죽이는 것이다” 며 그의 춤에 감동하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본디 민속춤에는 춤, 소리, 악기의 세 박자가 어우러져야 하나 그는 춤만 있을 뿐 나머지 요소는 갖추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은 “춤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그 시너지가 극대화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값진 조언을 덧붙여 드디어 명인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그 후 전국 명인협회 221명 중 ‘참다운 명인’ 2인에 선정되어 당당하게 울산 지회장을 맡게 되었다. 또한 2015년 대한민국 장인으로 지정되어 장인협회 경남/울산지회장을 역임하면서 울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에게 따뜻한 조언은 물론, 능력은 있으나 기반이 없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울산에 각 분야별 장인 12명을 등록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그는 울산의 장인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산 할 수 있는 ‘장인 예술제’를 만드는 꿈을 실현하고자 했으나 울산이란 변방은 그의 춤을 인정해 주지 않는 차가운 시선으로 꿈은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고 그의 마음속엔 얼음이 박힌 것처럼 차고 시렸다.

■ 춤에 소리를 더하다

그럴 때 마다 그는 마디가 생겨 더욱 강해지고 그의 손을 잡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도 다가와 걸음을 나란히 했다. 올해 4월 최길 작곡가를 만나 그의 구음에 곡을 붙인 ‘태초의 움직임’이라는 명곡으로 춤에 날개를 달았다. 최길 작곡가는 “명인의 구음에 지난 세월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며 “모든 것을 다 토해낸 곡”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춤사위에 어울리는 가락을 만들어 그의 춤이 세계무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그의 외로운 걸음을 응원했다.

그동안 참아낸 세월과 이겨낸 세월의 무게 중심이 이희숙 장인 쪽으로 기울고 이어지는 낭보가 그를 더욱 굳건하게 일으켜 세운다. 그는 지난 8월 21일 ‘2023년 대한민국 국회 문화예술 초대전’에 초청받아 ‘고살풀이 춤’으로 많은 이목을 끌었으며 그의 존재를 뚜렷하게 각인시키고 고살풀이 춤이 어떤 의미인지 그 춤을 품은 그의 세상이 어떠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오는 11월 미주예총광복회, 재향군인회의 초청으로 전국을 넘어 세계무대에 도전할 예정이며 문화관광부 주최 독도의 날 행사에서도 그가 걸어온 예술혼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홀로 외로운 길이었던 고살풀이 춤이 이제는 온 세상이 인정해 주는 날이 왔다”며 “이제부터 고살풀이 춤을 더욱 세밀하고 깊이 연구하여 후학양성으로 보존해 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온갖 곡절과 풍파에 이지러지고 기울어도 다시 차는 보름달처럼 환했다. 그동안의 땀과 노력이 가을 햇살에 무르익듯 결실을 맺어 가시로 박힌 설움이 조금은 상쇄되는 것 같았다.

이희숙 장인은 비바람에 꺾이고 넘어져도 이 세상 단 하나뿐인 간절함으로 다시 활짝 피어나 아름다운 생을 살아가려고 한다. 지난날의 애상이 침잠하고 매번 절정을 향해 치닫는 그의 춤은 현재진행형이다. 겉은 연약하나 내면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에너지를 간직한 그의 걸음이 깊숙한 침묵을 깨고 춤의 나래를 활짝 펴 더 멀리 날아가길 바란다. 스산한 바람마저 찢는 가시나무처럼 강렬하고, 무채색 꽃에 색을 입히듯 소리 없이 스며드는 그의 춤사위가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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