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
어떤 사람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10.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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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함이 엄습하는 가을 
따뜻한 배려로 다가가는
참 좋은사람이 되어보자
이두남 발행인
이두남 발행인

가을 색 짙은 향기로 수줍게 피어난 들판의 꽃은 햇살에 그을리며 하늘하늘 웃고 있다. 이맘때면 간월산 자락에 은빛 파도를 물들이는 억새평원의 향연이 펼쳐진다. 많은 가을을 지나치고 알 듯 모를 듯 가을은 남아 마른 낙엽만 바스락 밟은 기억뿐이지만 다시 파란하늘과 들국화가 아름다운 계절로 기억하고 싶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풍성한 과일은 윤택한 빛으로 단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을 정취는 마음에 비축해 두고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사용해도 좋은 천상이다.

미국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레이첼 리먼 필드가 쓴 ‘어떤 사람’이란 시가 있다.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 몹시 피곤해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있으면
마음 속 생각이 모두 움츠려들어 /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생각이 환해져서 / 반딧불이처럼 환해진다는 것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느낌을 대조해서 쓴 이 시는 글을 읽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과연 어떤 느낌을 주는 사람일까? 내 생각만 강조하여 상대에게 마음의 문을 닫게 하는 사람, 거칠고 딱딱한 어조로 촉촉하던 마음도 메마르게 하는 사람, 부정적이고 강압적이어서 대화를 중단하고 밀어내고 싶은 사람. 이런 감정을 유발시킨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반대로 만나면 마음이 환해져 반딧불 같은 아름다움을 갖게 하는 사람, 상대의 얘기에 공감해 굳게 닫았던 빗장을 열어 마음을 보일 수 있는 사람, 긍정적이어서 온통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 같은 사람, 대화를 나누면 용기를 얻고 어둠을 밝혀 삶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등대 같은 사람. 이런 존재라면 늘 행복하고 기쁨의 나날이 될 것이다. 

누구나 후자의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어떤 사람으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있는지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가을이어도 좋을 것 같다.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보다는 이해할 줄 아는 포용, 남이 아닌 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는 배려는 아름다운 배경으로 작용한다. 배려라는 단어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이다. 우리는 상대의 깊은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고 희망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한낱 툭 던진 짧은 말 한마디는 찻잔 속의 태풍일 수 있으나 그 작은 소용돌이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경험한다.

감사와 배려는 때때로 기적을 일으킨다고 한다. 생각지 못한 감사와 배려가 내 안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와 시야가 열리고 나의 세상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배려는 마음이 넓은 사람에게 주어진 고귀한 무기다. 여름 내내 무거웠던 하늘과 쳐진 어깨가 계절이 바뀌자 높고 푸른 하늘로 변하고 마음도 가볍다. 우리 안에 있는 좁고 작은 이기심의 웅덩이를 버리고 가을하늘을 닮은 마음을 품는다면 그 어떤 사람은 후자가 될 것이 자명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아프지 않고 성숙하는 어른은 없다.

특히 젊은 날은 꿈과 아픔이 동시에 차오르는 시기이다. 뿌리가 약해 흔들리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높은 가을 하늘을 더 오래 담고 누군가의 아픈 날에 향기로운 들꽃이 되어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면 의미 있는 가을이 될 것이다. 제 모습을 각인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갈등과 거침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자신을 잃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인생의 참다운 가치이며 허무함을 주는 가을에 찬연한 서정을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 잔의 차도 어떤 물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화초도 어떤 마음으로 키우느냐에 따라 다른 꽃이 피어난다. 사람도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서녘에 올려다 보이는 간월산 자락이 더욱 붉어지고 능선의 억새는 선명한 은빛을 발할 것이다. 간월재에 부는 바람은 작은 풀잎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쓰다듬어 준다. 

높은 가을 하늘이 더없이 맑고 푸른 이유는 한가위 보름달로 한바탕 씻어 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도 얼룩진 부분이 있다면 가을 찬바람에 말끔히 씻어내고 어떤 사람으로 이 가을과 마주할지 생각해보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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