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현실 사이
신화와 현실 사이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11.13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재와 술의 이중주에 담긴
비극적 종말의 복선(伏線)

역사에 대한 무지와 
정치적 노림수가 직면할 부메랑
김정배 (전) 신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김정배 (전) 신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역사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온당하다. 그 역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각자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수일 전 12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대구를 방문하여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당시 국정 운영을 되돌아보면서 배울 점은 지금 국정에 반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둘 사이 저간의 일들에 비추어 그런 모습에서 구태의연한 정치적 셈법을 읽어내지 못할 시민이 있을까 싶지만, 태도 자체는 좋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배울 점’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박정희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워낙 심하게 갈라져 있어 설령 어떤 합리적 결론이 도출된다고 해도 어느 쪽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박정희가 특정 위기상황에서 미국과 어떻게 소통했는지 사례를 소환하여 ‘교훈적 · 복선적’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청와대 습격과 23일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 나포로부터 2월 15일 밴스(Cyrus Vance) 미국 대통령 특사가 박정희를 만나고 귀국하여 보고하기까지 한미 사이에서 발생한 심각한 갈등과 불신에 관한 얘기다. 쟁점 중 하나는 유사한 북한의 습격이 있을 시 ‘보복’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판문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미 ‘비밀회담’ 문제였다.

박정희는 북한의 청와대 습격으로 자신과 국민이 “체면을 구겼다”라고 생각했고, 미국의 미지근한 대응 태도에서 한미동맹의 가치를 의심했다. 게다가 푸에블로 나포 이후 응징은커녕 판문점에서 북한과 비밀회담을 열고 있는 미국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았다. 박정희는 향후 청와대 습격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응징 이전에 미국과 ‘사전 협의’하겠지만 그것은 ‘절차상의’ 문제고 만약 미국이 보복을 반대한다면 “미국의 조언에 응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한 박정희의 태도는 미국을 당황스럽게 했다. 당시 한국은 북한과 유사하게 북한 침투 공작을 전개하고 있었고 1967년 11월에는 북한의 사단 본부를 폭파한 적이 있었다. 미국은 청와대 습격이 그에 대한 보복 성격도 있다고 보았다. 미국은 한국의 보복을 계기로 그러한 침투 공작이 동맹과 세계에 알려지면 그들의 지지 상실은 물론이고 북한의 선전 공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자칫 한국전쟁의 재개로 이어질 사태를 우려했다. 게다가 박정희는 북한과 소련 및 중국과의 군사적 동맹 관계를 무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푸에블로 승무원 송환과 베트남전쟁 조기 종결을 놓고 소련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처지여서 소련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판문점 비밀회담을 공개회담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한국 대표를 참가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공개회담으로 전환하면 회담이 북한의 선전장이 될 것이 뻔했고 북한이 한국 대표의 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담 자체를 거부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으로서는 판문점 북미 비밀회담이 푸에블로와 승무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인데 그것을 닫아버리려는 친구인 한국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박정희의 요구를 놓고 미국은 다각도의 설득을 시도했다. 심지어 두 차례 양국 대통령의 친서 교환을 통해서. 그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의 위성국이 아니듯 미국도 한국의 위성국이 아니다.” “한국이 베트남에서 한국군을 철수시키면 한국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험악한 말까지 오갔다. 결국, 밴스 특사의 파견으로 양국의 갈등은 봉합된 듯 보였다. 

박정희는 위기 상황에서 미국 입장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군사지원을 비롯하여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거의 다 얻었다. 하지만 손실 또한 컸다. 무엇보다 박정희의 유별난 성격과 행동을 미국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이 공유했다는 사실이다. 밴스는 대통령과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한 캐비닛 룸 논의 및 공식 보고서에서 박정희를 “과격하고, 변덕스럽고, 감정적이고, 짜증을 잘 내는” 성격의 소유자며 자신의 부인과 여러 보좌관에게 “재떨이를 던진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정희는 술을 마시면 온갖 명령을 내린다. 장군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 그것에 대한 어떤 행동을 미룬다. 만약 다음 날 아침 그가 이들 명령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전날 밤 그가 한 말을 잊어버린다”라는 말로 과음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그 누구도 박정희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박정희 자체가 위험이고 불안이라는 것이 미국의 인식이었다. 

박정희는 북한의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 나포 이후 위기 상황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 듯이’ 미국의 ‘협박’하여 대규모 군사적 지원과 지지를 얻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의 불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박정희의 고집과 술과 국정 운영 방식의 위험성에 대한 미국 관리들의 부정적 인식은 미국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판단한 10월 유신을 거치면서 어떤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듯 증폭되어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