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순수하고 다정한 향기를 품은 이시향 시인
〈17〉 순수하고 다정한 향기를 품은 이시향 시인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11.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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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동심을 가득품은 시
선한 향기를 전하는 시인
한편의 시도 진한울림으로
디카시와 사랑에 빠진 이시향 시인이 디카시를 설명하고 있다.
디카시와 사랑에 빠진 이시향 시인이 디카시를 설명하고 있다.

노란 국화꽃 향기에 하늘은 더욱 청명하고 눈부신 햇살은 온 누리에 펼쳐 혼탁한 세상을 환하게 채색하는 가을이다. 자연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가을에 선뜻 내어준 이유를 알 것 같은 지난 달 27일 남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시향 시인은 친구들과 열심히 뛰어 놀다 달려온 개구쟁이처럼 신나고 환한 모습이었다. 가을이 되면 주위의 울긋불긋한 산들이 호수로 내려와 물이 맑아지듯 그와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정화되어 깨끗한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고향인 제주도의 풍광을 닮아서인지 단순하다 싶을 만큼 순수하고 다정하다. 그의 단순함 밑에는 깊이와 품위를 장착하여 결코 가볍지 않은 내적 사유의 품격이 존재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바쁜 시간을 쪼개 도모하고 있으니 그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가 곱절이 넘을 것 같은데도 물리적 나이를 거뜬히 거스르는 해맑은 동심의 소유자다.

■사람의 녹을 닦아내는 시

어렸을 때부터 꽃과 사진,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시를 잊고 살 것 같은 공대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녹이 슨 압력용기에 녹 떨어내는 작업을 거쳐 페인트칠을 해서 납품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낱 기계도 녹을 떨어내면 깨끗하게 되살아나는데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아내기 위해 불의와 타협하기도 하고 꼭 움켜쥐려는 시회에 물들고 녹이 슨다고 생각하니 사람들의 녹은 어떻게 닦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며 그 깊은 사유가 이유 있는 시로 탄생했다.

그는 녹슨 천사’라는 닉네임으로 회사 동료들에게 시와 사진을 매일 한 편씩 메일로 보내기 시작했고 동종 업계에서도 그의 시와 그림으로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멀리서 출장을 오면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로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겪었다며 웃음 지었다.

“나에게는 단순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스며드는 것 같아 녹슬어 가는 마음을 조금은 정화시키는 것 같다”며 삶의 찌꺼기를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 후 시의 향기를 줄여 ‘시향’이라는 다음 카페를 열어 회원들과 공유했고 놀랍게도 그림공장’이라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해보자는 제의가 왔다“며 그동안 써 놓은 시를 모아 2003년 봄 등단과 동시에 ‘사랑은 혼자 해도 아름답습니다’라는 시집을 출간해 시 부문 1위에 랭커 되기도 했다.

“등단 후 울산 문협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시가 동심을 자극하는 동시 느낌이라며 아동문학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아동문학과 디카시의 필연적 만남

“2006년 ‘아동문학 평론’으로 동시에 등단했고 무엇보다 아동문학을 귀하게 여긴다”는 시인의 말에서 아동문학작가로서의 삶에 행복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여백이 있는 사진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2012년 디카시 (디지털 카메라와 시의 합성어)를 알게 된 후 디카시와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했다”며 디카시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네이버 밴드 ‘문학 동아리 시의 향기’를 개설하고 디카시 백일장 및 전시를 이어갔다. 지금도 디카시 관련 밴드를 여러 개 운영한다며 디카시는 5행 이하의 짧은 문장이지만 내포되어 있는 메시지는 강렬하다고 덧붙였다.

“처음 디카시를 접하면 늘 보이던 사물이, 그냥 지나치던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면서 “그 풍경에 사진을 더하면 디카시가 된다”며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디카시의 매력을 과감 없이 전달했다.

‘피다’라는 디카시집에는 대표 시 ‘피다’에 뚜렷하게 각인된 함의가 있다. ‘꽃이 피다’와 ‘피가 나다’의 함의는 절망과 희망은 동의어라며 시를 낭독했다.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고/꿈이 사라지는 것 아니듯/나를 자른다고/봄꽃 못 피우겠는가

“이 시는 오래 된 목련의 가지를 다 잘라내었는데도 이듬해 화사한 꽃을 피우는 목련과 회사에서 일을 하다 동생의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둘을 접목시켜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쓴 시다”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 찾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고,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해 진한 여운으로 다가왔다.

지울 수 없는 상흔에 진실한 감정을 결합한 시는 감동과 희망이 되어 더욱 충만한 삶으로 채워지는 것 같다. 또한, 그의 시는 어머니로 인해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깊고 어머니를 주제로 한 시가 많다. 어머니 세 글자에 이미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모습에서 겹겹이 쌓여 마음을 흔드는 어머니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다.

“남편을 일찍 여읜 어머니는 홀로 9남매를 키워 내느라 무척 고생이 많으셨다”며 “그래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매일 밤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잊지 않는다”고 수묵화처럼 은은하고 담담한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냈다.

“94세가 되신 어머니는 여전히 꽃을 좋아하시고 다소 조락한 모습으로 요양원에 계시지만 자식의 안부를 늘 궁금해 하시고 밝은 모습이라 참 다행이다”며 멀리서 어머니의 기도 소리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어머니 팔순을 기념하여 어머니와 관련된 시를 모아 ‘그를 닮은 그가 부르는 사모곡’이라는 헌정시집을 발간했다”며 어머니의 빈틈없는 사랑에 감사했다. 9남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차오르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하며 다소 손해를 보는 일이 있어도 더 베풀며 한 번의 다툼 없이 우애 있게 지낸다고 한다.

제주시 삼양 검은모래 해수욕장에 세워진 ‘삼양포구의 일출’ 시비.
제주시 삼양 검은모래 해수욕장에 세워진 ‘삼양포구의 일출’ 시비.

■한 편의 시라도 진한 울림으로

등단한 지 20년이 넘은 그는 “많은 시를 쓰는 것보다 한 편의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시인이 되고 싶다”면서 “어렵고 힘이 들어가는 시보다 시를 통해 힘을 얻는 시를 쓰고 싶다”며 누구에게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멀고 어렵게 느꼈던 시인의 꿈을 나의 시집을 보고 용기를 얻어 시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누군가의 꿈을 향한 걸음에 밀알이 되어 기뻤다”며 희망적인 시선으로 머무는 삶에 감사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이시향 시인은 노을이 아름다운 제주시 삼양 검은 모래 해수욕장에 〈삼양 포구의 일출〉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며 “세상에 온 이유에 대해 합당한 일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산사태로 죽음의 목전까지 경험했다. 큰 수술 후 석 달 동안 입원치료를 했고 그 후에도 통원하며 지속적인 치료를 하게 되어 학교를 1년 휴학하는 아픔을 겼었다.

“꽃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큰 꽃밭이 있었고 휴학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꽃에게 말을 걸며 꽃밭에서 보냈다”면서 “지금도 꽃, 바다, 새 등 자연에 종종 말을 거는데 그때부터 생긴 버릇이다”며 “감상에 흐드러지게 잠겨 있을 때 자연도 나에게 화답한다”고 말했다. 그의 상념의 갈피 속에는 결핍도 있겠지만 향기로운 동심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가족들과 가꾸는 텃밭에도 한 이랑은 꽃으로 채울 정도로 꽃을 사랑하는 시인이다. 가족들과 텃밭을 일구며 얻는 즐거움, 계절의 변화, 성취 등을 ‘시를 일구는 텃밭’이라는 주제로 2년 동안 지역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시향 시인은 현대인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고 시련을 토닥토닥 달래주고 싶은 진심을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위안을 준다. 그는 매년 열 가지 목표를 정하는데 매일 한 편의 디카시 일기쓰기, 매월 한 권의 전자책 발간하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전자책으로 발간하니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글에 대한 미안함으로 남아 지금은 멈춤의 시간이라고 한다. 울산아동문학회장, 한국디카시인협회 울산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직장을 다니며 매주 수요일 선바위 도서관에서 디카시 강연을 하는 열정부자다.

“덤으로 살아가는 날에 후회가 스며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면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생겨 나를 견인한다”며 자신의 재능을 남김없이 쓰고 가려는 마음이 뚜렷했다. 생명의 근원은 맑고 깨끗하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녹이 슨 부분을 시를 통해 조금이라도 치유해주고 싶다며 “글쓰기는 나의 일상이며 글을 쓰며 익어간다”고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았다.

그 끝없는 모험과 도전에 흐드러지게 잠겨 특별한 재능을 쉼 없이 축적하는 모습에서 그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더욱 선명해진다. 가을이 선뜻 내어준 아름다움은 천만가지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시향 시인이 동심으로 채운 문장들이 혼탁한 세상을 깨끗이 닦아 아름다움을 선뜻 내어 주는 가을정경만큼이나 맑고 찬연한 세상으로 밝아지길 바라본다. / 칼럼니스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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