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 울산시민신문
  • 승인 2023.12.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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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신념과 무지의 늪
해방의 길과 문화

눈먼 권력이 초대한
물구나무서기 아침놀
김정배 논설위원
김정배 논설위원

요즘 세상은 신선함과 명랑함을 찾기 어렵다. 당혹스럽고 낯설다. 따스한 상식과 익숙한 관행이 쫓겨나고 그 자리를 병든 영혼과 차가운 냉소가 꿰차고 있다. 악취가 진동하고 똥파리 떼가 설을 만난 꼴이다. 

올해처럼 끔찍하고 가증스럽고 참담하고 분한 일이 줄을 이은 고통의 세월을 산 기억이 없다. 늑대나 하이에나 전갈이나 방울뱀이 먹이를 물어뜯고 독 발라 숨통을 끊어 놓듯, 마구잡이 법 기술로 심장을 도려내는 완장들이 백주에 거리를 활보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찢긴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신체의 본능적 반응은 현기증과 구토다. 그런 다음 정신을 붙잡고 발을 옮겨 산을 오른다. 고요한 침묵과 부드러운 미소로 지켜보는 푸른 솔을 벗 삼고 싶어서. 머잖아 찾아올 아침놀이 역사의 숙명이라는 믿음을 품고 다시 세상 사이를 걸을 힘을 얻자.

우리 사회의 식자층은 소위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당면한 문제의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고 처방한 적이 거의 없다. 말 그대로 먹물처럼 세상의 실상을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 여우처럼 그렇지 않은 척 교묘하게 위장하기까지 한다. 불신과 부정직 교활함과 무도함이 삶의 주인이 되고 있다. 

검은 피와 카멜레온 품성을 이어받은 족속들은 이때다 싶을 때 어김없이 해묵은 이념이나 안보 이슈를 들먹이며 고개를 쳐든다. 전쟁의 상처와 기억에 짓눌려 살아온 아니 그렇게 살도록 길들여진 대중의 무릎을 아예 으깨면서. 그런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은 물려받은 디엔에이의 업보다.

홍범도 장군 관련 이념적 주장이나 북한 미사일 관련 안보적 태도는 씁쓸하고 식상하다. 그런데도 유사한 일들이 재연되는 것은 그릇된 신념에 기댄 속물적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역사적 사회적 이슈가 정치성을 띠는 것 자체는 탓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지적 정서적 한계를 여과 없이 배설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그렇게 왜곡된 거짓 사실에 자극받은 대중의 분노와 적개심을 부추기고, 나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지극히 고약하다.

특정 주제에 대한 전문성 유무를 떠나 시민 각자가 사회적 정치적 공간이나 일상적 장소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말하는 것은 정당하고 권장할 일이다. 다만 정신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다르듯, 자유로운 생각과 말은 구속된 생각이나 말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일이지만 좀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보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저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인식하고 말하는 근본적 원인이나 이유를 알고 있을까?’ 참지 못하고 속마음 꺼내놓으면 대개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라는 짜증 섞인 날선 반응이 돌아온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라고 한마디 더 던져 볼까 하다 그만둔다.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이 ‘거짓’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는지 알아보는 것이 물어본 의도였다. 해당하는 대답을 얻었다면 대화는 계단을 오르며 밤을 지새워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부유하고 유능하고 교양 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사회적 갈등이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는 1, 2차 세계대전, 제국주의, 냉전, 한국전쟁, 탈식민주의, 세계화 등 복잡한 경험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과거의 폐단을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애착이나 변화에 대한 저항도 있을 수 있다. 최근의 사회적 갈등은 그러한 흐름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따뜻한 치유와 창조적 내일을 위해 문화의 역할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19세기적 고급문화 범주를 넘어서는 인성, 문학, 종교, 예술, 무속, 오락, 윤리의식, 정치적 경제적 의식 모두를 포괄한다. 문화는 삶의 생태적 환경이라는 의미다. 인류학자 기어츠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자신이 뿜어낸 의미의 그물 가운데 고정되어있는 거미와 같은 존재다.” 누구도 그들이 속한 사회의 특정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성리학의 조선, 가톨릭의 서양 중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근대세계는 그들의 기본적 세계관, 즉 문화를 넘지 못했다. 지금의 한국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냉전적 이분법적 정치의식, 성장 신화적 가치의식, 현시적 소비주의,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어김없이 노출되는 지적 정서적 퇴행이 미래를 막고 있다. 이 무거운 멍에에 기생하는 편협과 폭력, 이기심과 뻔뻔함, 무지와 억지, 거짓과 위선을 추방하려는 진액을 짜내듯 고통스러운 성찰이 요구되는 까닭이다. 

비전과 방향을 잃은 지배욕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세상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위험이다. 사익을 목적으로 삼는 눈먼 권력은 속성상 과거의 무덤을 들추어내어 파괴하고 역사의 변조나 위조까지 일삼는다. 하지만 병든 권력이 내던진 독화살은 부메랑이 되어 그 권력의 심장을 겨누는 법이다. 그때 태양은 다시 바다 저편에서 환한 미소를 머금고 물구나무서기로 달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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