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건망증, 거짓말
술, 건망증, 거짓말
  • 강경수
  • 승인 2012.09.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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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법조인 교수 성직으로 존경받아

예나 지금이나 의사와 법조인․교수는 항시 선망의 대상이다. 비단 서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이들이 크게 존경받는다. 수입과 근무여건 등이 달라 요즘 들어서는 인기․비인기 분야로 차별화되긴 했어도 다들 선호하는 직업이다.

가히 성직(聖職) 이라 할 만큼 사람들에게서 신망이 두텁다. 이유는, 의사는 사람의 육체적 생명을 다스리고, 법관은 생리적 또는 사회적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또 교수는 인간의 정신적 생명에 관여하고 있어서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의사․법관․교수 모두가 가발을 쓰고 가운을 입었다.

거기다 이들 모두가 똑같이 엄숙했고 사회로부터 권위가 인정됐다. 특히 법관의 경우는 지금도 법복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스럽고 권위 있는 직업이다 보니 의사는 물론 검․판사나 변호사는 힘들게 공부하고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교수 역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

의사․법관․교수에게는 시험이라는 관문이 있는 반면 이들보다 더 엄격한 자격이 요구되는 국회의원은 시험이 없다. 유권자들의 심판이 따른다고 하지만 사실상 무시험 전형이다. 법을 집행하는 법관은 고시를 통과해야 법을 다룰 수 있지만 법을 만드는 입법자인 국회의원은 정치적 수완(?) 하나면 그만이다. 정치만 잘하면 됐지 인격이니 자질이니 학식 따위는 상관이 없다.

그래서 국회의원도 후보 고시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학력 따위의 응시자격은 두지 말되, 헌법을 비롯한 국제법․형법․민법 등은 필수과목으로 정해두는 것이 어떨까. 국사나 외교사․문화사 등의 실력도 따져봄직하다. 필요하다면 외국어나 웅변술까지도 테스트한 뒤 후보를 정하면 밀실공천이니 낙하선 공천이니 하는 시비가 사라지지 않을까.

이왕이면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건강검진은 또 어떨지. 신체장애야 결격사유가 될 수 없고, 정신건강, 특히 건망증 정도는 사전에 검증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볼 일이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말이다. 이번 안철수 협박 파문만 보자.

지난 6일 안철수 원장측 금모 변호사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캠프의 정모 공보위원으로부터 안 원장의 대선 불출마 종용 협박을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안 원장의 뇌물 및 여자문제를 거론하며 대선 불출마를 종용하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반박 기자회견을 통해 정 모 위원은 “금 변호사와는 대학동기이자 절친한 사이로 시중에 나도는 소문을 전해줬을 뿐 협박이나 불출마 종용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정치판 우습게 알다가 망신당한 건망증 천재

그러면서 “문제의 전화는 출근길 자신의 승용차를 몰며 했다”고 주장했다.(이날 정 위원은 공보위원직을 사퇴했다.) 친구 사이의 일상적 대화로 끝날 해프닝인지 아니면 의도적이고 계획된 정치공작인지는 곧 밝혀질 일이다. 그러나 예상컨데 정 전위원의 개인적 공명욕으로 빚어진 사건으로 결말날 공산이 커 보인다.

결과야 어떻게 됐던 사안이 간단치 않은 것은, 정 전위원이 공개석상에서 거짓말을 했거나 건망증이라는 병세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전화통화 장소가 자신의 승용차 안이라던 주장이 불과 6일 만에 영업용 택시였다는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를 시인한 정 전위원은 일부러 한 거짓말이 아니라 전 날 마신 술 탓으로 돌렸다. 착각 아니면 건망증 때문이라며 사안을 대수롭지 않을 일로 얼버무렸다.

지난 4․11 총선에서 공천을 주고 낙선한 정치 초년생에게 대선 캠프 공보위원직까지 맡긴 새누리당 지도부도 정 전위원의 말만 믿고 억지를 부렸다. 박근혜 후보는 “친구 사이의 대화를 침소봉대해 정치적으로 이용한 구태”라며 역성을 들었고, 당 대변인은 정 전위원의 개인문제로 책임을 전가 했다.

정 전위원 역시 어렵사리 고시를 통과해 검사가 돼서 그런지 정치판을 너무 홀가분히 여긴 듯하다. 그토록 정치가하고 싶으면 자신의 건망증 정도는 미리 치유 받고 뛰어들었으면 어땠을까.

누가 그랬나. 건망증은 천재만의 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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