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를 기억하세요! -야간(夜間)에 대한 향수-
그 때를 기억하세요! -야간(夜間)에 대한 향수-
  • 정은영
  • 승인 2013.01.25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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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夜間)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해가 진 뒤부터 먼동이 트기 전까지의 동안이다. 낱말 설명이 단순하다. 그러나 7080세대들에게 야간의 의미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적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더 잘 알려진 7080세대는 이 나라 산업의 역군이었다는 허울 좋은 명예만 안고 지금은 서서히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이들의 자녀들은 부모의 못다 배운 한을 풀기라도 하듯 모두가 번듯한 대학 간판을 달았다.

7080세대, 그들 시대는 통행금지도 있었다. 불철주야(不撤晝夜), 즉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던 세대들이다. 이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주간에는 일하고 야간에는 학업을 이어갔다. 오후 5시가 되면 저녁밥을 해결하고 콩나물 시내버스에 올랐다.

학교에 도착하면 오후6시, 바로 강의가 시작된다. 식곤증에 꾸벅 졸다보면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리고 하루의 강의가 끝나는 마지막 종이 울렸다.

최근 중앙 언론에 실린 야간고와 야간대학교에 대한 기사가 7080세대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깜빡 잊고 살았던 시절, 바로 자신이 걸어온 삶의 흔적들이 야간이라는 낱말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울산은 공업도시로 출발하면서 기업들의 간판이 번듯했지만 서울 영등포 구로공단이나 부산 사상공단들의 기업규모는 환경이나 시설이 열악하기가 형편없었다. 7080 세대들은 기능직 사원이 아닌 공원으로 불렸다.

남자는 공돌이, 여자는 공순이로 불렸던 근로자들에 대한 대우 역시 볼품없었다. 그 시절은 월급이 아닌 보름마다 반달치의 임금을 주는 기업들이 흔했다.

여공들은 벌집 같은 단칸방에 5명이나 6명이 거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 시절을 여공으로 살았던 7080 세대 주부들은 주·야가 바뀌는 근무시간으로 인해 크게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다며 그 때를 회고 했다. 돌이켜 보면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아련한 추억이다.

그 때, 이들의 꿈은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 성공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향학열도 대단했다. 걸어가면서 영어 단어를 외웠다. 그들 가운데 필자가 아는 상당수가 지금은 어엿한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나머지들도 기업의 고급 간부나 고위 공무원으로 봉직하다 수년전부터 직장을 떠나는 연륜이다.

이들의 꿈을 키웠던 야간고와 야간대학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모두가 잊고 있던 틈에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1986년 21만 명(9.3%)이던 야간고 학생 수가 현재는 전국에 14개교, 학생 수는 1만2천여 명으로 줄었다. 1978년 기준 야간대학이 설치됐던 대학교는 전국에 34 개 대학이었으나 현재는 7개 대학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존 마틴 OECD 고용노동사회국장은 지난 1월 22일 열린 국제심포지엄 ‘청년 일자리, 새 정부와 OECD에 길을 묻다’의 특강에서 야간대학과 실업계 고교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지금은 사이버 대학들이 야간대학 수요자를 흡수하고 있다. 하지만 귀담아 들을 말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깜빡 잊어 버렸던 것을 그가 일깨워 준 것이다.

다시 한 번 야간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나라 산업의 역군으로 상실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누가 야간이라는 말로 보상을 할 수 있을까, 세월은 말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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